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300013
한자 傳統 韓屋- 白眉 金命寬 古宅
영어공식명칭 Kim, myengkwan' House
분야 생활·민속/생활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지역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산외면 공동길 72-10[오공리 808]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남해경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특기 사항 시기/일시 1784년 - 정읍 김명관 고택 건립
소재지 정읍 김명관 고택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산외면 공동길 72-10[오공리 808]지도보기

[정의]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산외면 오공리에 있는 조선 후기 김명관이 지은 대표적인 상류 가옥.

[개설]

정읍 김명관 고택은 1784년(정조 8) 한양에서 내려온 김명관(金命寬)이 창하산 아래에 명당을 잡고 건축한 집이다. 김명관은 광산 김씨 시조 김흥광의 30대 손이자 파시조(派始祖) 판교공(判校公)의 11대 손으로 당시 대부호였다. 정읍 김명관 고택은 99칸 집이라고 부르는 전형적인 정읍 지역의 상류층 가옥이다. 1773년 짓기 시작하여 10년 만인 1784년 완공하였다. 정읍 김명관 고택을 지을 때 사용한 목재는 순창군 구림면에서 운반하여 왔다고 한다. 정읍 김명관 고택은 국가민속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본래 이름은 후손의 이름을 따 ‘정읍 김동수씨 가옥’이었으나 김동수의 6대조인 김명관이 1784년 건립한 것을 반영하여 2017년 2월 28일 ‘정읍 김명관 고택’으로 지정 명칭이 바뀌었다.

[풍수의 명당에 자리 잡은 고택, 12대까지 운이 있는 집]

정읍 김명관 고택은 주변의 자연환경을 고려하면서 풍수의 명당 형국을 활용하여 지은 집이다. 정읍 김명관 고택이 있는 오공마을은 창하산(蒼霞山)을 배산으로 하고 앞으로 동진강이 흐르고 있으며, 안산은 앞에 있는 독계봉(獨鷄峰)과 화견산(火見山)이다. 창하산은 모양이 지네를 닮았다고 하여 지네산이라고도 부르는데 청하산은 지네의 머리에 해당한다고 한다. 정읍 김명관 고택의 안채는 지네의 몸통에 해당하며 혈은 사당에 있다고 한다. 동진강은 구비구비 흘러 사행천이 아님을 알 수 있으며, 독계봉과 화견산은 전면의 넓은 들판을 가로질러 있어 전형적인 명당임을 한눈에 알 수 있다. 특히 풍수를 적용하기 위하여 건축과 조경을 하고 연못을 팠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창하산의 지네가 벌레[지렁이]를 먹고 자라는데, 벌레가 서식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기 위하여 집 앞에 연못을 파서 습기를 유지하여 주고 안산의 독계봉인 닭이 지네를 잡아먹지 못하도록 연못 앞에 느티나무 64그루를 반달 모양으로 심어 지네를 감추어 주었다는 것이다. 즉, 배산의 지네는 앞에 있는 연못에서 자라는 벌레를 먹고 안산의 닭은 지네를 잡아먹지 못하도록 느티나무로 가려 주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건립자 김명관이 사망하면서 “이 집은 12대까지 운이 있는 집이니 팔지 말라”라고 유언할 정도로 명당으로 여겼다고 한다. 당시 김명관은 대부호여서 일반적으로 집을 지을 때 안채를 짓고 경제적인 여건에 따라서 이후 사랑채, 행랑채 등을 단계적으로 짓는 데 반하여 정읍 김명관 고택은 안사랑채에 기거하면서 한 번에 집을 다 지었다고 한다.

[고택의 배치와 구조]

정읍 김명관 고택의 전체적인 배치를 보면 마을 전면 중앙에 주인과 큰 아들이 살았던 본채가 있고 좌측에 둘째 아들이 살았다는 집이 있으며 우측에 셋째 아들이 살았던 집이 나란히 배치되어 있다. 중앙에 있는 정읍 김명관 고택은 대문을 중심으로 ㄷ자 형의 행랑채가 있고, 행랑채 대문을 들어서면 전면을 담장으로 막아 측면으로 진입할 수 있도록 한 전정 공간을 두었다. 우측 출입문을 들어가면 -자 형의 사랑채가 있다. 사랑채 좌측 후면에는 ㄷ자 형의 안행랑채가 있으며 안행랑채 문을 지나면 ㄷ자 형의 안채가 있다. 안채 좌측에는 안사랑채가 있으며 우측 후면에는 사당이 있다. 각 건물에는 전면을 중심으로 앞마당과 뒷마당이 형성되어 있어 건물에 따른 각각의 공간이 형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외부 공간으로는 집 전면의 텃밭, 안채 후면의 밭, 뒷마당이 있다. 그리고 안채 뒤에는 우물이 있으며 집안 곳곳에 물확 등 조경 요소가 있다. 뒷밭과 건물은 작은 담장으로 나뉘어 있다. 앞과 뒤에는 노비가 살았다는 호지집이 있었는데 전면에 4채, 후면에 4채가 있었다고 한다. 현재는 전면에 1채, 후면의 안채와 사당 사이에 1채가 있다.

안채의 평면은 ㄷ자 형태로 가운데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에 방과 부엌이 대칭으로 되어 있다. 대청 앞과 뒤에는 마루가 설치되어 있으며 안채에서는 집안의 대소사가 이루어졌다. 좌측 방과 부엌은 집주인이 사용하고 우측은 큰아들이 사용하였다고 한다. 방에는 다락이 설치되어 있다. 구조는 외벌대 기단 위에 약간 가공한 주춧돌을 놓은 다음 방형의 기둥을 세우고 창방과 결구하고 있다. 내부 가구는 5량집인데 도리는 납도리이고 소로받침이 없다. 대청 상부는 연등천장으로 하여 상부를 노출하고 방은 천장지로 마감하였다. 지붕은 홑처마에 팔작지붕이다. 사랑채는 정면 5칸, 측면 3칸인데 좌측에 대청이 있고 우측에 방이 있고 전면에는 마루가 있다. 구조는 가공석으로 외벌대 장대석 기단을 설치한 다음 약간 가공한 방형 주춧돌을 놓고 위에 방형 기둥을 세우고 창방과 결구하고 있다. 내부 가구는 5량집이고 도리는 납도리이며 소로받침이 없다. 지붕은 홑처마에 팔작지붕이다. 안사랑채는 정면 5칸, 측면 3칸으로 부엌과 방, 대청으로 구성되어 있다. 안사랑채는 정읍 김명관 고택의 안주인이 주로 사용하는 공간으로 지인을 접견하거나 집안 친척들이 방문하면 사용하였다고 한다. 특히 시집간 딸이 산후조리를 할 때 안사랑채를 사용하였으며 정읍 김명관 고택을 처음 지을 때는 목수들이 안사랑채에 머무르면서 집을 지었다고 한다. 구조는 외벌대 장대석 기단 위에 약간 가공한 방형 주춧돌을 놓은 다음 방형 기둥을 세우고 창방과 결구하였다. 내부 가구는 5량집이다. 천장은 대청 상부는 연등천장으로 하고 방은 천장지 마감을 하였다. 지붕은 홑처마에 팔작지붕 양식이다. 이외에 사당은 안채 우측 후면에 있는데 정면 1칸, 측면 1칸의 공간에 위패를 모시고 있다. 구조는 화강암을 가공하여 외벌대 장대석 기단을 설치하고 위에 고복형 주춧돌을 놓은 다음 두리기둥을 세워 창방과 결구하고 있다. 지붕은 홑처마에 맞배지붕 양식이다. 바깥행랑채는 대문을 중심으로 좌우에 방과 함실부엌, 대청, 대문간, 곡간 등으로 구성되었다. 구조는 낮은 기단 위에 자연석 덤벙주춧돌을 놓고 방형 기둥을 세워 도리와 결구하고 있다. 안행랑채는 대문간채를 중심으로 방과 곡간, 화장실로 구성되어 있다. 구조는 낮은 기단 위에 자연석 덤벙주춧돌을 놓고 방형 기둥을 세워 도리와 결구하고 있다. 지붕은 홑처마에 우진각지붕 양식이다.

[호지집, 부의 상징]

정읍 김명관 고택에는 정읍 지역의 상류 가옥이어서 일반 집에서는 볼 수 없는 호지집이 있다. 호지집은 조선 시대 양반집에서 사노비 중 외거노비가 살던 집이다. 지역마다 명칭이 조금씩 다른데 경상도에서는 가랍집, 전라도에서는 호지집, 평안도에서는 마가리집, 황해도에서는 윳집이라고 한다. 정읍 김명관 고택의 호지집은 본래 앞에 4채, 뒤에 4채가 있었다고 하나 현재는 앞에 관광 문화유산 해설사가 기거하는 집과 뒤에 사당 측면에 있는 호지집 2채가 남아 있다. 또한 도둑이나 강도 등 위험에 처하였을 때 주인이 호지집으로 피신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사당 옆의 호지집은 정읍 김명관 고택의 노비 중에서 가장 믿을 만한 노비가 기거하도록 하였다고 한다. 현재 전면의 호지집은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부엌, 방으로 구성되었다. 구조는 외벌대 기단 위에 자연석 덤벙주춧돌을 놓고 위에 방형 기둥을 세운 다음 도리와 결구하고 있다, 지붕은 홑처마에 우진각지붕 양식이며 초가로 마감하였다. 사당 옆의 호지집은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부엌과 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구조는 외벌대 기단 위에 자연석 덤벙주춧돌을 놓고 도리와 결구하고 있다. 지붕은 홑처마에 우진각 지붕 양식으로 초가로 마감하였다.

[건축적 특징]

정읍 김명관 고택의 건축적 특징으로 대표적인 것은 첫째, 공간 구성과 더불어 배치 기법이다. 즉 공간 구성을 하는 데 있어서 유교 건축의 이념을 따라 남성 중심의 사랑채, 여성 중심의 안채, 제향 공간인 사당을 중심으로 구성하고 있으며 여기에 여성 공간의 사랑채격인 안사랑채를 두었다. 그리고 이러한 공간은 담장과 행랑채, 협문으로 공간을 연결하기도 하고 차단하기도 하는 분절 기법을 사용하고 있다. 특히 공간의 접근에 있어서 먼저 대문을 열면 내부의 공간이 보이지 않도록 부분적으로 폐쇄된 전정 공간을 두고 측면을 통하여 사랑채로 진입하도록 되어 있다. 안채의 접근 역시 안행랑채를 통하여 진입하는데 이전에는 대문을 반쯤 가린 가림막이 있었다고 한다. 또한, 건물을 배치하는 데 있어서 축을 설정하지 않은 비대칭 구조를 보이고 있고 외부 공간에서 내부 공간을 직접 접근하거나 진입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즉 공간 구성 기법에 있어서 은유법을 적용하고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 자연스러운 형상의 부재를 사용한 점이다. 정읍 김명관 고택의 안채에 있는 대들보나 인방, 안행랑채의 대들보, 인방 등을 보면 가공하지 않은 자연재를 사용하여 건축하였음을 알 수 있다. 부재 하나하나가 자연스러운 자체의 형상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특히 안행랑채의 외양간에서 상인방은 아래로 호를 형성하도록 하고 하인방은 위로 호를 형성하도록 하였는데 나무의 형상을 그대로 이용하면서 건축적 미의 효과를 극대화하고 있다. 그리고 원래 대들보를 놓을 때 벽체의 경계를 형성하는 기둥을 중심으로 대들보와 충량을 연결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정읍 김명관 고택 사랑채 대청의 대들보는 한 부재를 마루 끝까지 연결하여 대들보와 충량을 한 부재로 구성하고 있다. 이렇게 과거 선조들의 뛰어난 건축적 미학과 과학, 기술을 살펴볼 수 있다. 우리나라의 목수들은 한옥을 짓는 과정에서 오늘날과 같이 도면을 보고 가공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목수의 머릿속에서 구상하여 목재를 가공하였다. 그리고 별도의 치목장에서 맞춤과 이음을 위한 촉과 구멍을 만든 다음에 목재를 현장에 운반하여 조립하는데도 거의 오차가 없었다. 실로 대단한 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

[우수한 문화재로서의 가치]

최근에 정읍 김명관 고택정읍 김명관 고택이 있는 오공마을이 명당이라고 하는 것을 과학적으로 증명하기 위하여 CFD(Computational Fluid Dynamics) 실험을 실시하였다. 즉 마을 모형을 만들고 마을 여러 지점에서 온도, 습도, 풍속, 풍향 등 미기후의 자연 조건을 측정하고 실험실에서 바람을 불어 환경 영향을 평가하였다. 그 결과 최근에 건축한 가설 건축물 외에는 바람이 마을 전체를 원활하게 순환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렇게 전통 마을의 명당이 환경적인 측면에서 양호하다는 내용을 과학적으로 증명하기도 하였다. 이처럼 정읍 김명관 고택은 건축적인 측면이나 미학적 측면, 과학적 측면에서 매우 우수한 가치를 지닌 문화재이다. 또한, 은유적인 공간 구성 기법, 자연스러운 곡부재의 사용을 통하여 정읍 김명관 고택이 한국적인 건축적 미를 표현한 최고의 작품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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