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나랜스(Homo Narrans)적 욕망과 정읍 설화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300014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지역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영미

[정의]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에서 전승되는 설화와 이야기에 대한 인간의 욕망.

[개설]

설화는 크게 신화, 전설, 민담으로 구분되는데 신화가 신성성을 상실하면 전설과 비슷하고, 전설이 증거물을 상실하면 민담과 비슷하다. 정읍에서 전승되는 이야기들은 신화적인 것은 거의 없고 민중적인 전설과 민담이 대부분이다. 유형별로 보자면 암석 유래담 같은 지형지물 유래담이 많고 인물담이나 명당 및 공동체 신앙 관련 이야기들이 전한다.

[이야기의 욕망]

인간은 시공간을 초월하여 이야기를 생산하고 소비하고자 하는 욕망을 갖고 있다. ‘이야기하는 인간’, 즉, 인간은 누구나 이야기 본능을 가진 호모 나랜스(Homo Narrans)다. 인간은 이야기하려는 본능이 있고, 이야기를 통하여 사회를 이해한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향한 인류의 행보 자체가 ‘천일야화’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의 이야기에 대한 욕망을 설화화한 것 중에서 가장 오래된 이야기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미다스(Midas) 왕의 이야기이다. 미다스 왕의 이야기는 『삼국유사(三國遺事)』 권2의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와 같은 유형의 설화이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는 여이설화(驢耳說話)라고도 하는데, 신라 48대 임금인 경문왕(景文王)[?~875]의 귀 이야기이다.

경문왕이 왕위에 오르고 난 뒤 갑자기 귀가 길어져서 당나귀 귀처럼 변하였는데, 왕후나 궁인들 중 누구도 알지 못하였다. 오직 왕의 두건을 만드는 복두장이만 알았지만 함부로 발설할 수는 없었다. 복두장이는 답답한 마음에 아무도 없는 대숲에 가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크게 외쳤는데, 이후 대숲에서 바람이 불 때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소리가 났다. 이에 왕이 대나무를 베고 산수유를 심게 하였는데 그 뒤로는 “우리 임금의 귀는 길다”는 소리가 났다고 한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와 같은 유형의 설화는 세계적으로 광포되어 있다. 그리스 신화 속 미다스 왕 역시 당나귀 귀였는데, 유일하게 비밀을 아는 사람이 이발사로 변형되고, 비밀을 발설하는 장소가 갈대밭 등으로 변형되어 있을 뿐이다.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분석하면, 『삼국유사』 속 경문왕이나 그리스 신화 속 미다스 왕의 ‘긴 귀’는 특별한 상징적 의미를 갖는다. ‘긴 귀’의 의미는 여러 측면에서 다양하게 해석될 소지가 있는데, 감추려고 하지만 종국에는 숨길 수 없는 왕의 ‘허물’을 뜻하는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두 설화가 단순히 귀의 상징성 때문에 주목받는 것은 아니다. 발설하면 죽임을 당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도 어딘가에 이야기하고 싶어 미칠 것 같은 인간의 욕망 때문에 더 주목을 받는다. 욕망을 이기지 못한 이발사나 복두장이는 사람이 아닌 일종의 매개체에게 왕의 비밀을 이야기하고 결국 그로 인하여 곤란을 겪는다. 두 설화는 목숨을 걸고서라도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인간의 욕망, 이야기에 대한 인간의 ‘호모 나랜스(Homo Narrans)’적인 욕망을 적실하게 보여 준다. 그뿐만 아니라 이야기에 대한 욕망과 결합되는 소문의 본질까지 보여 준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정읍 지역에서 채록된 설화 중에도 이야기의 욕망과 이야기의 힘을 직접적으로 보여 주는 설화들이 있다. 「이야기 잘하는 막내사위」, 「이야기 사서 도둑 방지」, 「끝없는 얘기로 부잣집 사위 된 총각」 등이다. 「이야기 사서 도둑 방지」는 제목 그대로 하찮게 보이는 이야기를 사서 도둑을 쫓을 수 있었다는 설화인데, 이야기의 힘을 직설적으로 보여 준다. 또 「끝없는 얘기로 부잣집 사위 된 총각」은 이야기가 가진 힘과 함께 재미있는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는 인간의 욕망을 보여 준다. 옛날 한 산골의 부자 영감이 ‘이야기를 잘하는’ 사람을 사윗감으로 선택하겠다고 선포하자 많은 총각들이 부잣집 사윗감 후보에 지원을 하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룬 내용이다. 1984년 정읍시 소성면에서 채록된 「끝없는 얘기로 부잣집 사위 된 총각」은 한국구비문학대계(https://gubi.aks.ac.kr)에서 음원을 들을 수 있는데, 그중 일부를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시험을 보니 근디 그 영감님 생각으는 어쨌든지 이 얘기를 질고 구성지고 멋있게만 히야 합격을 시키겄는디 와서 어찌고 저찌고 큰애기 하나만 욕심을 내갖고 와서 이 얘기 허는 것이 다 시시혀.”

부잣집 영감님은 성격, 재력, 학력 등등 하고 많은 사윗감의 조건 중에서 ‘이야기를 질고 구성지고 멋있게’ 하는 것을 자신의 딸과 혼인할 사람의 가장 중요한 조건으로 여기는 것이다. 이야기의 상징적 힘을 보여 준다고 할 수 있다. 이야기는 상징적이라서 힘이 더 강력하며 더 끌리는 것이다. 『삼국유사』는 왕후장상(王侯將相)의 거창한 이야기가 아니라, 민초들의 시답잖은 이야기 같지만 그 생명력은 천년의 세월을 관통하고 있다. 이야기의 재미와 공감이 시대를 초월하는 것이다.

정읍 사람들도 잉여 시간이 생길 때마다 ‘정읍’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채우며 살아왔고, 살아가고 있다. 정읍의 장소와 사람, 사물, 사건을 떠올리면서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이야기 형식으로 재구성하고 말하고 전하여 왔다. 정읍 사람들의 이야기에 대한 욕망이 어떻게 ‘정읍’이라는 시공간을 채우는지 정읍의 장소나 인물 등의 설화를 통하여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정읍의 자연, 정읍의 이야기]

정읍 설화에는 지형지물 유래담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다. 정읍 지역 마을 곳곳마다 특별한 바위, 돌, 나무, 연못, 산 등 특이한 지형지물이 있는데, 그중에서도 암석 유래담이 상당히 많다. 「족두리 바위와 신부」, 「팽매바위와 치마바위」, 「소원돌」, 「치마바위 애화」, 「정해의 치마바위」, 「면목바위」, 「용과 말이 싸운 바위」, 「어머님 시비와 거북바위」, 「숫골의 장군바위」, 「구시바위」, 「칠성바위와 천하장사」, 「산신령이 보낸 포수바위」, 「할미바위와 물소리」 등이다.

이야기 속의 바위들은 정읍 지역민들에게 다른 여느 바위와 구별되는 형상적·심리적 특별함을 지니고 있다. 정읍 지역민들은 그 특별함을 이야기로 풀어내고, 이야기들을 통하여 바위들은 더욱 지역적인 특징을 지니고, 마침내 정읍 곳곳에서 지역적 상징물이 된다. 이야기와 바위가 서로 상관물이 되어 이야기는 바위를 통하여, 바위는 이야기를 통하여 서로에게 특별하여지는 것이다.

그리하여 어떤 바위는 사랑의 상징이 되고, 어떤 바위는 마을의 수호신이 되며, 어떤 바위는 지역민의 한이 서린 바위가 된다. 결국 바위 전설들은 실제 정읍의 지리적 공간을 표지하는 증거물로 작용하는 한편, ‘바위’를 중심으로 한 정읍의 자연적·인문적 경관을 형성하게 된다. 바위 이야기들을 통하여 지형지물을 바라보는 정읍 지역민들의 의식 세계, 나아가 자연과 함께 더불어 사는 정읍 지역민의 삶을 엿볼 수도 있다.

정읍을 대표하는 상징성은 여러 분야에서 찾을 수 있지만 그중 자연적인 요소에서 고른다면 단연 내장산을 꼽을 수 있다. 내장산 관련 설화로는 「내장산 단풍이 붉은 이유」가 있다. 깜깜한 밤이 되도록 내장산에서 돌아오지 않는 어머니를 찾을 수 있기를 바라며 아들이 간절한 기도를 올리자 내장산 산신령이 기도를 들어주어 내장산의 나뭇잎들을 붉게 만들어 깜깜한 산을 비추어 주었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끝내 아들은 어머니를 찾을 수 없었고 그 후 해마다 가을이 되면 아들이 어머니를 찾을 수 있도록 산을 밝히느라 나무들이 눈부시게 붉게 물들었다고 한다. 내장산 단풍이 다른 지역보다 유독 붉고 아름다운 이유를 산의 신령스러움과 아들의 인간적인 효심에 빗대어 풀어낸 것이다. 자연적인 경관을 인문적인 경관으로 바꾼 정읍 사람들의 세계관을 볼 수 있는 이야기이다.

한편 어떤 의인이 자신의 목숨을 걸고 지독한 가뭄의 원인이 되는 못된 용의 꼬리를 잘라 정읍이 더 이상 가뭄이 없고 풍년이 계속되는 곳이 되었다는 「의인과 용의 꼬리」 이야기, 천병이 들었던 공주가 정읍 태인의 한 청년 집에서 하룻밤 묵고 나니 몸과 마음이 평안하게 되었다는 「공주와 머슴」 이야기 등은 또 다른 측면에서 정읍의 자연을 시사한다. 두 이야기는 정읍의 자연을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있지는 않지만, 간접적으로 ‘정읍’이라는 지역이 ’풍년이 들어 살기 좋은 고장’, ’천병도 치료할 수 있는, 생태·자연적으로 안락한 곳’이라는 이미지를 심어 준다.

이야기를 통하여 정읍의 바위들은 사랑과 한을 품었으며 내장산의 붉은 단풍은 효심의 상징이며, 정읍 땅은 용감한 의인이 나는 장소가 된다. 조선 시대 이순신(李舜臣)[1545~1598] 장군 같은 사람이 정읍현감이 된 것은 어쩌면 필연적일 것이라는 개연성을 정읍 사람들 스스로가 만들며 살아온 것이다.

[인물담과 정읍 민중들의 꿈]

정읍 설화에는 인물담을 다수 찾아볼 수 있다. 보통 인물담은 인구에 회자되는 유명한 인물들이나 효자, 열녀 등과 관련된 이야기들이다. 그런데 정읍 인물 이야기에서 주목할 점은 효자나 열녀 같은 인물담들은 설화화 과정을 좀 더 깊이 겪으면서 역사적 인물성은 약화된다는 점이다. 주로 효자와 열녀 이야기를 매개로 지역의 지형지물의 유래를 설명하는 것으로 연결되는 경우가 많다.

「유장춘과 조석교」 같은 경우가 대표적이다. 유장춘(柳長春)이라는 효자로 인하여 ‘조석교’라는 다리 이름과 ‘양친지’라는 웅덩이 이름, ‘추복등’이라는 산등성이 이름 등이 유래되었다는 것이다. 효(孝)와 열(烈) 관련 설화들은 어느 지역에서나 볼 수 있는 이야기들이지만 「호랑이 타던 효자」, 「효심이 놓은 외나무다리」, 「은씨촌의 정문」, 「순이방죽과 사랑」 등의 이야기에서 보이는 효와 열은 정읍 지역의 지형지물과 관련을 맺으면서 정읍의 장소성을 살펴볼 수 있게 한다. 아울러 열녀 이야기의 특징적인 점도 발견되는데, 단순한 순절이나 정절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그런 측면에서 「은씨촌의 정문」, 「순이방죽과 사랑」 등은 특히 주목할 만한 이야기이다.

정읍 지역에서 설화적으로 향유되고 있는 역사 인물들은 동학농민혁명의 주역인 전봉준(全琫準)[1855~1895], 전라도관찰사로 정읍 지역과 인연을 맺은 이서구(李書九)[1754~1825], 정읍 태인의 학자 일재(一齋) 이항(李恒)[1499~1576], 명필 이삼만(李三晩)[1770~1847] 등이다. 인물들과 관련하여서는 「녹두장군 전봉준」, 「갈처사와 이서구」, 「일재 이항의 조화」, 「이삼만과 뱀」 등의 여러 설화들이 전승되고 있다.

설화적으로 향유되는 대표적인 인물은 명필 이삼만이다. 이삼만 관련 설화들이 다양하게 관찰되는데, 이삼만의 출생부터 이삼만과 뱀 이야기, 이삼만과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1786~1856] 관련 이야기, 명필가를 부각시킬 만한 일화들, 이삼만과 관련된 풍속의 유래 등등 내용도 다채롭다. 특히 「이삼만과 뱀」 이야기는 이삼만 글씨체와 함께 효심을 가진 아들로서의 이삼만을 동시에 보여 주고자 하는 정읍 사람들의 심리가 녹아 있다. 약초를 캐던 아버지가 독사에 물려 죽은 뒤로 이삼만은 원수를 갚기 위하여 뱀만 보면 닥치는 대로 잡았다고 하는 설화들이 다수 보인다. 이는 ‘뱀’이라는 매개체를 통하여 이삼만의 글씨체를 은유적으로 보여 주는 동시에 이삼만의 효심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재미있는 점은 역사적·사실적 차원으로 보았을 때 정읍 지역과 특별한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박문수(朴文秀)[1691~1756] 이야기가 정읍에서 상당히 많이 채록된다는 점이다. 물론 박문수 설화는 하나의 유형을 이룰 만큼 전국적으로 광포된 설화이기는 하지만 정읍 지역에서 많이 채록되는 데에는 정읍 지역민의 심리가 반영되어 있다고 여겨진다.

김동필의 『정읍의 전설』에 수록된 「암행어사 박문수와 은이방」에서는 박문수가 고부의 이방들이 관청의 물건을 사사로이 소비하며 재물을 긁어모으고 나랏돈을 허비한다는 소문을 듣고 이방 은씨 집에 잠입한다. 하지만 곁에서 지켜본 이방 은씨는 근검절약은 물론이고 남모르게 어려운 사람 구제도 잘하므로 오히려 박문수가 이방 은씨의 형편이 펴도록 도왔다는 이야기이다.

「암행어사 박문수와 은이방」에서는 ‘정읍’이라는 지명이 구체적으로 등장하지만 사실 대부분 정읍에서 채록된 박문수 설화는 정읍의 지역적 성격을 찾기 어렵다. 그럼에도 정읍 지역에서 상당히 많은 양의 박문수 설화들이 채록 및 보고되는 것은 박문수 설화가 정읍 민중들의 ‘꿈의 실현’에 큰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박문수는 두 차례 영남과 호서의 암행어사로 나갔지만 박문수의 사실적 삶과 민중에 의하여 형성되고 향유되는 박문수의 설화적인 삶은 동일하지 않다. 역사적 삶과 무관하게 정읍 지역에서 향유되는 박문수는 정읍 지역민들의 꿈을 실현시키는 상징적 인물인 것이다.

사람들에게는 억울함을 풀어 줄 사람, 복수를 하여 줄 사람, 착한 일을 한 사람이나 기특한 효부·효자·열녀에게 보상을 하여 줄 사람, 시집·장가를 가지 못한 민초들이 혼인할 수 있게 도와줄 사람이 필요하다. 가난하여 혼인을 하지 못하는 총각을 어떤 암행어사가 결혼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는 식의 감동적인 이야기가 민중들에게 전하여지면 지역 이야기판에서는 그 암행어사를 박문수로 바꾼다. 일제 강점기에도 역사적 활동 연대가 전혀 맞지 않는 박문수 설화가 전국에서 만들어지고 향유된 까닭이다. 또 가난하여 혼인을 못하는 총각이나 억울한 민중들은 정읍에도 역시 많이 있을 것이다. 그 억울함을 풀고 소망을 이루고자 하였던 꿈이 정읍에서 다수의 박문수 설화들을 향유하게 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정읍 지역에서 박문수 설화 채록의 의미를 더 확장하여서 보자. 일반적으로 박문수 설화에는 꿈의 실현을 보여 주는 이야기들이 많지만, 때로 꿈의 좌절 상황을 보여 주는 이야기들도 있다. 꿈의 좌절 상황, 즉 억울한 이들이 해원하지 못할 때 역설적으로 정읍 사람들은 더욱더 선정을 베풀 목민관을 기다리며 박문수 설화를 향유하였을 가능성도 있다. 또 꿈이 좌절된 상황에서 역사적으로는 새로운 가능성의 탐색이나 운동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예컨대 고부군수 조병갑(趙秉甲)의 탐학이 극한 상황에서 일어나 폐정개혁(弊政改革)을 외치던 정읍의 동학농민혁명이나 새로운 세상을 꿈꾸던 정읍 지역의 보천교(普天敎) 같은 종교적 움직임도 결국 꿈의 실현과 좌절의 이야기가 역사적으로 표상화된 것이라고 여겨진다.

[그 밖의 이야기들과 정읍]

정읍 이야기들 가운데에는 명당과 관련된 화소나 종교와 관련된 이야기들도 상당하다. 정읍은 강증산(姜甑山), 원불교, 보천교 등 다양한 종교가 발달한 지역이라서 「강증산과 천지대도」처럼 종교와 관련된 설화들이 많이 만들어졌을 것으로 보인다.

또 돌이나 바위에 신성한 힘이 있다고 믿는 것이나 목신, 산신, 당산신 등을 섬기는 공동체 신앙을 확인할 수 있는 설화도 한 부류를 이루고 있다. 당산신 관련 설화로는 「옷 입은 당산석」, 「당산나무의 꾸지람」, 「당산나무와 용」, 「당산나무에서 나는 징소리」 등이 있다. 자연물의 영적 힘을 믿고 자연에 순응하며 사는 정읍 사람들의 순박한 정서가 반영된 이야기들이다.

명당과 관련된 이야기들은 「사두혈과 내석동」, 「비봉산의 명당」, 「호랑이가 잡아 준 명당」 등이 2001년 정읍문화원에서 발행한 『정읍의 전설』에 실려 있고, 한국구비문학대계(https://gubi.aks.ac.kr)에서도 다수의 설화를 찾아볼 수 있다. 명당 관련 이야기들을 통하여서는 정읍 지역민들의 발복 기원은 물론 명당을 생활 터전으로 삼고 있음을 자부하는 지역민들의 긍지도 함께 확인할 수 있다.

마한 시대부터 정읍에는 정읍 땅을 지키며 살던 정읍 사람들이 있었다. 백제 시대에는 행상 나간 남편을 간절히 기다리며 부르던 노래와 결국 남편을 기다리다 망부석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결합되어 「정읍사(井邑詞)」가 탄생하였다. 조선 시대의 정읍은 정극인(丁克仁)[1401~1481]의 「상춘곡(賞春曲)」에서 볼 수 있듯이, 홍진에 묻혀 사는 속인들이 감히 알 수 없는 물아일체를 꿈꾸게 하는, 내장산 등의 아름다운 자연을 갖춘 고장이었다. 아울러 태인 고현동 향약(泰仁 古縣洞 鄕約)에서 보듯 함께 사는 공동체의 의미를 400년 전에 이미 맛본 고장이다. 또한 정읍은 꿈의 실현에 앞장섰던 개혁의 땅이면서 1,000년 전 최치원(崔致遠)[857~?] 같은 최고의 문장가의 흔적을 남기고 기억하는 선비의 땅이기도 하다. 정읍 피향정(井邑 披香亭), 정읍 무성서원(井邑 武城書院) 등의 역사적 장소들에 최치원의 흔적이 지금도 남아 있다.

정읍 설화는 정읍 땅에 살던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이야기에 대한 인간의 욕망과 본능, 즉 허구의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 말하고 들으려는 본능이 인간의 문화를 이끌어 냈듯이 정읍 지역민들의 이야기에 대한 욕망이 정읍 주변의 산과 바위, 나무, 물, 사람들에 대하여 이야기를 입혀 냈다. 정읍 사람들의, 정읍 사람들을 위한, 정읍 사람들에 의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설화의 주인공도, 이야기를 만들고 향유하던 사람들도 항상 정읍의 누군가이며 정읍의 어딘가이며, 정읍의 어떤 것이다. 특히 정읍 설화에 등장하는 인물은 특정 인물이 명시되는 몇몇 인물담을 제외하고는, 머슴, 중, 각시, 장수[유기 장수, 가자미 장수, 소금 장수, 짚신 장수 등], 떠돌이 등등 대부분 이름 없는 사람들이었다. 따라서 정읍의 이야기에는 이름 없는 정읍민의 정과 한이 서려 있으며, 정읍의 문학과 예술, 정읍민의 삶과 사유 방식을 읽어 낼 수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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