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30009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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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新泰仁邑 |
영어공식명칭 | Sintaein-eup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신태인읍![]()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영준 |
[정의]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에 속하는 법정읍.
[명칭 유래]
신태인읍(新泰仁邑)은 1912년 호남선이 개통되면서 만들어진 신태인역에서 명칭이 유래하였다.
[형성 및 변천]
조선 시대 태인현 지역으로 1895년 전주부 태인군에 속하였다가 1896년에 전라북도 태인군에 속하게 되었다. 1914년 북촌면(北村面)과 용산면(龍山面)을 중심으로 인곡면, 고부군 답내면 등의 일부 동리를 합쳐 용산면의 용(龍) 자와 북촌면의 북(北) 자를 따서 전라북도 정읍군 용북면(龍北面)이 개설되었다. 1935년 3월 1일 용북면에서 신태인면으로 개칭되면서 전라북도 정읍군 신태인면으로 개편되었다. 이후 1940년 11월 1일 신태인면에서 신태인읍으로 승격되면서 전라북도 정읍군 신태인읍으로 개편되었다. 1983년 2월 15일에는 태인면의 백산리를 편입하였다. 1987년 1월 1일에는 정우면 산북리의 일부와 감곡면 용곽리의 일부를 편입하였다. 1995년 1월 1일 도농 통합에 따라 정주시와 정읍군이 정읍시로 통합되면서 전라북도 정읍시 신태인읍으로 개편되었다. 2024년 1월 18일 전북특별자치도 출범에 따라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신태인읍이 되었다.
[자연환경]
신태인읍은 북동쪽의 구릉지와 서남쪽의 충적지로 나눌 수 있다. 북동쪽 구릉지는 중생대에 생성된 대보화강암을 기반으로 하고 있고, 오랜 풍화를 거쳐 얕은 구릉 지대를 형성하고 있다. 높은 산지가 백산[107.1m]과 명금산[54.1m] 정도이다. 남서부 충적지는 바닷물이 유입되는 갯벌로, 동진강에 의하여 퇴적물이 계속 쌓여 현재와 같은 충적토 지역이 되었다.
신태인읍에는 남쪽에는 동진강, 동쪽에 용호천, 서쪽에는 화호천이 흐르고 있다. 동진강은 정읍시 산외면 평사리에서 부안군 동진면 하구까지 흐르는 약 44.7㎞의 하천이며, 구석리에서 용호천과 합류하고, 신용리에서 정읍천과 합류하며, 하구에서 고부천과 합류한다. 용호천은 백산천 또는 범내라고 부르는데, 정읍시 옹동면 용호리에서 시작하여 신태인읍 구석리 앞에서 동진강과 합류한다. 용호천은 신태인읍과 태인면의 경계를 이룬다. 화호천은 신덕리, 육리, 청천리, 화호리의 물을 합하여 서북진하다가, 하호리 북쪽에서 남서진하여 동진강에 합류한다. 신태인읍과 김제시 부량면의 경계가 된다. 산지는 서쪽의 명금산에서부터 동쪽으로 승방산[감곡면], 백산으로 이어진다.
[현황]
2023년 5월 현재 신태인읍의 면적은 29.70㎢이며, 인구는 2,974가구, 5,207명[남자 2,549명, 여자 2,658명]이다. 신태인읍은 정읍시 북서쪽 끝에 있으며, 동쪽으로 감곡면, 서쪽으로 이평면, 전북특별자치도 부안군 백산면, 남쪽으로 정읍시 태인면과 정우면, 북쪽으로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부량면과 접하고 있다. 신태인읍은 정읍시 23개 읍·면·동[1읍, 14면, 8동] 중 유일한 읍이다.
신태인읍은 구석리, 신태인리, 연정리, 우령리, 신용리, 양괴리, 육리, 청천리, 신덕리, 화호리, 백산리 등 11개 법정리에 50개 마을[200반]로 구성되어 있다. 신태인읍행정복지센터는 정읍시 신태인읍 신태인중앙로 14[신태인리 142-65]에 있다.
신태인읍은 1912년 호남선이 개통되고 1914년 1월 11일 김제와 정읍 구간이 영업을 개시할 때 신태인역이 만들어지면서 발전하였다. 이전까지 화호리가 행정, 물산과 교통의 중심지였으나 신태인역이 들어서고 인구가 늘어나면서 주도권이 옮겨졌다. 현재 신태인읍의 중심 지역은 동진강 변에 있는 ‘서진몰’[현재 서지동]이라 불리는 작은 마을이었는데. 1910년대 이후 호남선 철도 공사와 동진강 제방 축조, 그리고 용산보의 축조와 이루어지면서 대규모 경작지가 조성되었다. 또 신태인역을 중심으로 개설된 도로를 중심으로 시가지가 형성되었다. 신태인역은 일제 강점기 호남 지역 미곡을 모아서 일본으로 반출하는 물류 센터의 역할을 하였다. 일본인의 이주도 많이 이루어져 1927년에는 일본인의 수가 722명[당시 한국인 1만 713명]에 이르렀다. 1930년대에는 100정보 이상을 소유한 일본인 농장[옹본농장, 부민협회농장, 적대본태랑, 전식태랑]의 농장 사무소가 신태인에 있었다. 해방 이후 일본으로의 미곡 반출이 중지되면서 기존에 미곡 관련 시설물들이 기능을 상실하여 상점과 주택으로 변화하였으나, 지금도 남아 있는 일본식 가옥에서 번성기의 자취를 볼 수 있다. 1960년대 중반 이후에는 도시 이주로 인구가 감소하기 시작하였다.
신태인읍의 주요 산업은 농업으로 쌀·고추·양송이 재배 등이 활발하고 축산업과 양송이 가공업도 행하여지고 있으며, 백산리 일원에는 조성 면적 14만 9000㎡ 규모의 신태인농공단지가 있다. 교통은 호남선의 김제역-감곡역-신태인역-초강역-정읍역으로 남북으로 연결된 철도가 통과한다. 도로는 전주와 정읍을 연결하는 국도 제1호와 고속국도 제25호가 동쪽 태인면을 통과하고 있다. 동쪽의 태인면에서 서쪽의 부안읍을 동서로 연결하는 국도 제30호가 있다. 남북으로는 지방도 제701호와 지방도 제736호가 X자 형태로 통과하고 있다. 교육 기관으로 초등학교는 신태인초등학교[신태인리], 신태인중앙초등학교[폐교, 양괴리], 서지말초등학교[폐교, 신태인리], 화호초등학교[폐교, 화호리] 등 4곳이 있었으나 인구 감소로 인하여 신태인초등학교만 남아 있고, 중등 교육 기관으로는 신태인중학교, 왕신여자중학교, 신태인고등학교, 왕신여자고등학교, 인상고등학교가 있다.
문화유산으로는 화호리를 중심으로 근대 문화유산인 정읍 신태인 구 도정공장 창고[국가등록문화유산], 정읍 화호리 구 일본인 농장 가옥[국가등록문화유산], 정읍 화호리 구 일본인 농장직원가옥[전북특별자치도 등록문화유산] 등이 있다. 공공 체육 시설로는 신태인체육관과 신태인축구장, 신태인파크골프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