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300105
한자 寶林里
영어공식명칭 Borim-ri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북면 보림리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영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 - 전라북도 정읍군 보림면 보림리 개설
변천 시기/일시 1935년 3월 1일 - 전라북도 정읍군 보림면 보림리에서 전라북도 정읍군 북면 보림리로 개편
변천 시기/일시 1995년 1월 1일 - 전라북도 정읍군 북면 보림리에서 전라북도 정읍시 북면 보림리로 개편
변천 시기/일시 2024년 1월 18일 - 전라북도 정읍시 북면 보림리에서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북면 보림리로 개편
성격 법정리
면적 5.77㎢
가구수 111가구
인구[남/여] 198명[남 105명|여 93명]

[정의]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북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당시 남쪽에 있는 보림사(寶林寺)의 이름에서 보림리(寶林里) 명칭이 유래하였다.

[형성 및 변천]

본래 태인군 남촌이변면(南村二邊面) 지역이었으며,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가정리(柯亭里), 상유리(上鍮里), 하유리(下鍮里), 입점리(笠店里), 구곡리(九谷里), 평촌리(平村里), 남촌일변면의 남기리(南基里) 각 일부를 병합하여 전라북도 정읍군 보림면 보림리로 개설되었다. 1935년 3월 1일 행정 구역 조정에 따라 보림면이 폐지되면서 북면에 편입되어 전라북도 정읍군 북면 보림리로 개편되었다. 1995년 1월 1일 전국적인 도농 통합 정책에 따라 정주시정읍군이 정읍시로 통합되면서 전라북도 정읍시 북면 보림리로 개편되었다. 2024년 1월 18일 전북특별자치도 출범에 따라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북면 보림리가 되었다.

[자연환경]

보림리 남쪽에는 칠보산 등의 산지가 솟아 있고, 북부는 보림천 연안에 충적 평야가 발달되어 있다.

[현황]

2023년 5월 31일 현재 보림리의 면적은 5.77㎢이며, 인구는 111가구, 198명[남자 105명, 여자 93명]이다. 보림리북면의 동남부에 있으며, 동쪽으로 칠보면 축현리, 서쪽으로 복흥리, 남쪽으로 칠보면 수청리, 북쪽으로 태곡리, 마정리와 접하고 있다.

보림리는 상하유(上下鍮)·입점(笠店)·가정(柯亭)의 3개 행정리로 이루어져 있다. 상하유마을은 상유리와 하유리로 불린 두 마을을 합하여 이루어졌다. 상유마을을 웃놋점이라고 하고, 하유마을을 아랫놋점이라고 불렀는데, 마을에 놋그릇점이 있는 데서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입점마을은 칠보산 자락에 있으며 갓점, 관동(冠洞)이라고 불리었다. 조선 명종 때 문신인 일재(一齋) 이항(李恒)[1499~1576]이 지금의 보림사가 있는 마을 부근에 보림정사(寶林精舍)를 짓고 강학을 하였다고 한다. 이후 유림에서 서원을 건립하면서 태인현 남촌일변면 관동리 관동마을로 불리었다. 일제 강점기에 옛날 삿갓을 많이 만들어 팔았다고 하여 갓점마을로 불리었다고 한다. 일제 이항의 후손들이 많이 살고 있어 성주 이씨(星州 李氏)의 집성촌이기도 하다. 가정마을은 개경(開鏡)이라고 부르는 윗마을과 청산리(淸山里)라고 부르는 아랫마을로 나뉘어 있었다고 한다. 1800년 대 후반 어느 승려가 마을에 쉬어가면서 정자나무가 좋아서 개경과 청산리 두 마을을 합하여 가정리라고 하면 자자손손 잘산다고 하여 이름을 고쳤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보림리는 농업이 주 산업으로 쌀 이외에 붉은 황토에서 고구마 생산이 많아, ‘북면 고구마’로 유명하다. 보림리에는 고려 시대 청환(淸奐)에 의하여 창건된 보림사가 있고, 남고서원(南皐書院)[전북특별자치도 문화유산자료], 일재 이항 묘비[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유산] 등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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