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3001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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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丹谷里 |
영어공식명칭 | Dangok-ri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입암면 단곡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래철 |
[정의]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입암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단곡리(丹谷里)는 ‘붉은 골짜기’라는 뜻인데, 우리나라에 흔한 적황색토에서 유래된 지명으로 추정된다.
[형성 및 변천]
본래 정읍군 서일면(西一面) 지역이었으며,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에 따라 단곡리, 내기리(內基里), 단촌리(丹村里), 성신리(誠信信), 양지촌(良之忖), 엄동리(俺洞里), 안양동(安良洞), 천원리(川原里) 각 일부를 병합하여 전라북도 정읍군 입암면 단곡리로 개설되었다. 1995년 1월 1일 도농 통합 정책에 따라 정주시와 정읍군이 통합되면서 전라북도 정읍시 입암면 단곡리로 개편되었다. 2024년 1월 18일 전북특별자치도 출범에 따라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입암면 단곡리가 되었다.
[자연환경]
단곡리는 방장산에서 북쪽으로 이어지는 이른바 두승지맥(斗升枝脈)에 해당하는 옥녀봉·매봉산·비룡산 자락이 감싸고 있는 모습이다. 전통 지리학상 산줄기 개념인 두승지맥은 영산기맥(榮山岐脈)의 방장산에서 시작되어 북쪽으로 이어지는 산줄기로 정읍천과 고부천의 분수령을 이룬다. 단곡리의 영역은 남북으로 긴 모양이며, 산지와 평야가 고루 분포하고 있다. 물줄기는 모아져 천원천을 이루고 북쪽을 향하여 흐른다.
[현황]
2023년 5월 현재 단곡리의 면적은 4.50㎢이며, 인구는 259가구, 400명[남자 197명, 여자 203명]이다. 단곡리는 입암면의 중앙부 왼쪽에 있으며, 동쪽으로 신면리, 하부리, 서쪽으로 봉양리, 남쪽으로 천원리, 북쪽으로 지선리와 접하고 있다.
단곡리에는 왕심(旺尋)마을, 월천(月川)마을, 양지(良芝)마을, 엄동마을, 차단(次丹)마을이 있다. 왕심마을은 비룡산 남사면에서 입암산을 조망할 수 있는 마을이며, 남북으로 소통하는 교통의 요지이다. 원래 성신리(誠信里)라고 하였다. 조선 시대 삼남대로가 통과하기 때문에 마을 근처에 왕신원(往信院)이라는 숙박 시설이 있었다. 『정읍 향리지』에 의하면 임금이 찾아와 줄 것이라고 하여 1910년부터 마을 이름을 ‘왕심(旺尋)’이라 하였다고 한다. 왕심마을 동쪽으로 국도 제25호가 지나고 있다. 고속국도 제25호 개통 무렵에 농촌 취락 지구 개선 사업으로 마을 경관이 개조되었다. 당시 왕심마을 진입로에 경관 조성과 차량 소음 방지를 위하여 60여 그루의 메타세콰이어 나무를 심어서 마을의 명물이 되었다. 마을 뒷산인 비룡산에는 작은 암자인 성불사와 비룡사가 있다. 월천마을은 다라월이라고도 부르는데, 마을의 형국이 달 모양이어서 월(月) 자를 쓰고 마을 앞 시냇물을 달내라고 한 것이 합하여져 ‘달내월’이 되었다가 나중에 ‘다라월’로 변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양지마을은 원래 양지바른 마을이라 하여 양지촌(陽地村)이라 하였다. 마을 앞으로 옛 국도 제1호가 남북으로 이어지고, 정읍 내장과 고창군을 연결하는 길이 교차한다. 차단마을은 단곡 다음에 생긴 마을이라는 뜻이다.
단곡리에는 황토현농협 입암지점, 정읍경찰서 입암지구대 등이 있으며 교육 기관으로 입암중학교가 있다. 단곡리 왕심마을 입구에는 기해농민봉기 100주년 기념비가 있다. 1899년 왕심마을 부근 거슬막에 약 300여 명이 집결하여 농민 봉기를 일으킨 것을 기억하고 추모하기 위하여 2020년 동학농민혁명계승사업회에서 기념비를 세웠다. 구한말 항일 의병 활동을 하다가 붙잡혀 전주 감옥에서 순절한 유병우가 단곡리 차단마을 출신이다. 엄동마을에서 양지마을로 가는 모퉁이에는 임진왜란 때 의병장이었던 유춘필의 유허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