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시산군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300409
한자 大尸山郡
이칭/별칭 태산군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
지역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칠보면
시대 고대/삼국 시대/백제
집필자 박노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폐지 시기/일시 757년 - 대시산군에서 태산군으로 개편
관할 지역 대시산군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칠보면 지도보기

[정의]

삼국 시대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칠보면 지역에 있던 백제의 지방 행정 구역.

[제정 경위 및 목적]

백제에서 행정을 원활히 하기 위기 위하여 설치하였다.

[관련 기록]

『삼국사기(三國史記)』 권제36 잡지 제5 지리3 신라 대산군 조에 “대산군(大山郡)은 본래 백제의 대시산군인데 경덕왕이[대산군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지금의 태산군이다. 영현이 3개이다[大山郡, 本百濟大尸山郡, 景徳王改名. 今泰山郡. 領縣三]”라고 되어 있다.

『삼국사기』 권제46 열전 제6 최치원 조에 “[최]치원은 스스로 당나라 유학[西學]에서 얻은 것이 많아 [신라에] 왔을 때 자신의 뜻을 행하고자 하였으나 [신라가] 쇠퇴하는 말기여서 의심과 시기가 많아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나가서 대산군 태수가 되었다[致逺自以西學多所得, 及來將行己志, 而衰季多疑忌, 不能容, 出爲大山郡大守]”라고 되어 있다.

『고려사(高麗史)』 권57 지 권제11 지리 2 고부군 대산군 조에 “대산군은 본래 백제 대시산군인데, 신라 경덕왕이 지금의 이름[대산군]으로 바꾸고 고부군에 속하게 하였다. 뒤에 감무를 두고 인의를 겸임하게 하였다. 현종 10년에 각각 감무를 두었다. 공민왕 3년(1354)에 고을 사람으로 원(元)에 사신으로 간 임몽고불화(林蒙古不花)[임뭉쿠부카]가 나라에 공을 세웠다고 하여, 승격시켜 군(郡)이 되었다[大山郡本百濟大尸山郡, 新羅景德王, 改今名. 至高麗, 來屬. 後置監務, 兼任仁義. 顯宗十年, 各置監務. 恭愍王三年, 以縣人元使林蒙古不花, 有功於國, 陞爲郡]”라고 되어 있다.

『세종실록(世宗實錄)』 151권, 「지리지」 전라도 전주부 태인 조에 “태산현(泰山縣)은 본래 백제의 대시산군이었는데, 신라에서 대산군으로 고쳤고, 인의현(仁義縣)은 본래 백제의 빈굴현(賓屈縣)이었는데, [일명 부성현(賦城縣)이라 한다] 신라에서 무성(武城)으로 고쳐서 태산군(太山郡)의 영현으로 삼았다가, 고려에서 인의현으로 고쳤다. 모두 고부군의 임내(任內)로 삼아 태산군으로써 감무를 겸하게 하였고, 현종 10년(1019년) 기미에 나누어 두 현으로 하였다. 본조 태종 9년(1409) 기축에 두 현을 합하여 태인으로 고쳤고, 16년 병신에 읍(邑)을 속역(屬驛) 거산(居山)으로 옮겼다[泰仁縣、泰山縣: 本百濟 大尸山郡, 新羅改大山郡. 仁義縣, 本百濟 賓屈縣, [一云賦城縣] 新羅改武城, 爲太山郡領縣, 高麗改仁義縣, 皆爲古阜郡任內, 以泰山郡兼監務. 顯宗十年己未, 分爲二縣, 本朝太宗九年己丑, 合兩縣, 改泰仁, 十六年丙申, 徙邑于屬驛居山]”라고 되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태산군 건치 연혁 조에 “태산군은 본래 백제 대시산군인데, 신라에서 태산[태(太)는 태(泰)와 통한다], 고려에 와서 고부군에 속하였다가 후에 감무를 두었다. 공민왕 3년에 고을 사람으로 원나라에 사신으로 간 임몽고불화가 나라에 공이 있어 군으로 승격되었다. 인의현은 본래 백제 빈굴현[또는 부성이라고도 한다]인데 신라에서 무성으로 바꾸고 태산군의 영현으로 삼았다. 고려에 와서 인의로 바꾸고 고부군에 속하게 하였으며 태산감무가 겸직하였다. 현종 10년에 각각 감무를 두었다. 본조[조선] 태종 9년에 다시 합하여 하나의 현으로 하고 지금의 이름[태인]으로 바꾸고, 치소를 거산역으로 옮겼다[太山郡本百濟大尸山郡. 新羅改太山(太通作泰). 高麗屬古阜郡, 後置監務. 恭愍王三年, 以縣人元使林蒙古不花有功於國, 陞爲郡. 仁義縣本百濟賓屈縣.(一云賦城). 新羅改武城, 爲太山郡領縣. 高麗改仁義, 屬古阜郡, 以太山監務來兼. 顯宗十年, 各置監務. 本朝太宗九年, 又合爲一縣, 改今名, 移治于居山驛]”라고 되어 있다.

『대동지지(大東地志)』 태인 연혁 조에 “본래 백제의 대시산이다. 당이 백제를 멸하고 대산으로 바꾸고 고사주의 영현으로 삼았다. 신라 경덕왕 16년에 태산군[혹은 태산, 또는 대산 □영현 3 : 빈성, 정읍, 야서]으로 바꾸고 전주에 속하게 하였다. 고려 현종 9년에 고부군에 속하게 하고 후에 현으로 강등하고 감무를 두었다. 본조[조선] 태종 9년에 인의현과 병합하고 태인으로 바꾸어 부르고, 치소를 거산역으로 옮겼다[예전 치소는 현의 서쪽 20리이다]. [태종] 13년에 현감으로 바꾸었다[本百濟大尸山. 唐滅百濟, 改帶山, 爲古四州領縣. 新羅景德王十六年, 改太山郡[一云泰山, 一云大山. □領縣三: 斌城, 井邑, 野西]. 隷全州. 高麗顯宗九年, 屬古阜郡. 後降縣, 置監務. 本朝太宗九年, 以仁義縣來倂, 改號泰仁, 移治于居山驛.[古治在縣西二十里]. 十三年改縣監]”라고 되어 있다.

[내용]

삼국 시대 백제에서 대시산군(大尸山郡)을 지금의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칠보면 지역에 설치하였으며, 757년(경덕왕 16)에 태산군(泰山郡)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백제 때에 대시산으로 불렸으며, 당이 백제 지역을 차지한 뒤에는 대산(帶山)으로 불렀다. 757년에 태산군으로 불렀는데, 태산(泰山) 또는 대산(大山)이라고도 하였다. 백제 때 치소는 지금의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칠보면 지역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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