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300423
한자 王信院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
지역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입암면 단곡리
시대 고려/고려,조선/조선
집필자 장순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폐지 시기/일시 1896년 1월연표보기 - 왕신원 폐지
관할 지역 왕신원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입암면 단곡리 지도보기

[정의]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입암면 단곡리에 있던 공공 편의 시설.

[개설]

원(院)은 공무로 여행하는 사람에게 숙식을 제공하기 위하여 중요한 길목에 설치된 편의 시설이자 공공시설이었다. 원의 설치 시기는 확실하지 않으나 삼국 시대부터 우역(郵驛)을 설치하였던 것으로 보아 삼국 시대에 이미 설치되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1530년(중종 25)에 간행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따르면 전국에 1,310개의 원이 있었으며, 정읍 지역에는 왕신원(王信院)광제원(廣濟院)을 비롯하여 11개가 있었다.

[제정 경위 및 목적]

역(驛)은 중앙 정부와 지방 간의 효율적인 연결망을 구축하기 위하여 육로에 설치한 교통·통신 제도였고, 원은 지방에 파견되는 관리에게 숙식 편의를 제공하던 숙박 시설이었다. 역과 원은 서로 밀접하게 관련되어 설치되기 때문에 역원(驛院)이라고 통칭되었으며, 역참(驛站)이라고도 하였다. 원은 교통 요지나 험한 영로(嶺路)에 설치되었는데 대개 30리[약 11.78㎞]에 하나씩 두었다.

원의 운영에 필요한 경비를 충당하기 위하여 고려 때에는 원위전(院位田)을 두었고, 조선 시대에는 1445년(세종 27) 원의 운영을 활성화하기 위하여 인근 주민 가운데 덕망 있는 사람을 원주(院主)로 정하여 원주전(院主田)을 지급하였다. 성종[재위 1469~1494] 대에 반포된 『경국대전(經國大典)』에 의하면 대로(大路)에 있는 원은 1결(結) 35부(負), 중로(中路)에는 90부, 소로(小路)에는 45부를 지급하여 원을 유지하도록 하였다.

[내용]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전라도 정읍현의 역으로 천원역(川原驛) 1곳과 영지원(迎池院), 왕신원, 광제원 등 3곳의 원이 기록되어 있다. 천원역정읍현 남쪽 25리[약 9.82㎞] 지점에, 영지원은 정읍현 서쪽 5리[약 1.96㎞] 지점에, 왕신원정읍현 남쪽 20리[7.85㎞] 지점에, 광제원정읍현 남쪽 30리에 위치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왕신원정읍현 남쪽 20리 지점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1871년(고종 8) 간행된 『호남읍지(湖南邑誌)』와 1895년 간행된 『호남읍지』에는 원에 대한 명칭은 보이지 않고, “천원역은 읍 서쪽 20리에 있다. 원(院)은 읍 서쪽 천원역 20리에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조선 후기 정읍현에는 천원역 1개의 역과 1개의 원만이 남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1896년(고종 33) 1월 대한제국 칙령 제9호 「각 역 찰방 및 역속 폐지에 관한 건」에 따라 전국의 역과 원이 폐지되면서 왕신원도 폐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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