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300521
한자 萬石洑 革罷 善政碑
이칭/별칭 군수안후길수 만석보 혁파 선정비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적/비
지역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이평면 하송리 677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조광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898년연표보기 - 만석보 혁파 선정비 건립
보수|복원 시기/일시 1994년 - 만석보 혁파 선정비 비각 건립
문화재 지정 일시 2016년 7월 26일연표보기 - 만석보 혁파 선정비 정읍시 향토문화유산 제8호 지정
현 소재지 만석보 혁파 선정비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이평면 하송리 677 지도보기
성격 비석
관련 인물 안길수
재질 화강암
크기(높이, 너비, 두께) 153㎝[높이]|45㎝[너비]|20㎝[두께]
문화재 지정 번호 정읍시 향토문화유산 제8호

[정의]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이평면 하송리에 있는 만석보 철거를 기념하여 세운 개항기 비석.

[개설]

만석보 혁파 선정비(萬石洑 革罷 善政碑)는 군수 안길수에게 농민들이 건의하여 만석보를 완전히 철거한 것을 기념하여 세운 비석이다. ‘군수안후길수 만석보 혁파 선정비(郡守安候吉壽 萬石洑 革罷 善政碑)’라고도 한다. 만석보 혁파 선정비는 2016년 7월 26일 정읍시 향토문화유산 제8호로 지정되었다.

만석보 혁파 선정비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이평면 하송리 예동에 있다. 예동은 동학농민혁명이 시작된 곳이다. 원래 정읍천동진강 본류가 맞닿는 지점에 농민들이 막아 놓은 보(洑)가 있었다. 아무리 가물어도 물이 풍부하여 보에서 물을 끌어 쓰면 농사를 잘 지을 수 있다고 하여 만석보(萬石洑), 또는 마을 이름을 따서 예동보(禮洞洑)라고 불렸다. 1892년 5월 고부군수로 부임한 조병갑(趙秉甲)은 농민들을 강제로 동원시켜 기존의 보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읍천과 태인천이 합류하는 지점에 새로 보를 쌓게 하였다. 그리고 물세 면제의 약속을 어기고 좋은 논에서는 한 마지기당 두 말, 좋지 않은 논에서는 한 마지기당 한 말의 물세를 수탈하여 예동·두전·백산 일대에 700여 석을 쌓아 놓았다.

그 무렵 삼남(三南) 지방에 가뭄이 계속되어 흉년이 들자 고부군 농민들은 만석보 물세를 감하여 달라고 두 차례나 고부 관아로 찾아가 군수 조병갑에게 호소하였지만 번번이 매만 맞고 쫓겨났다. 농민들 사이에서 새 만석보는 원망의 대상이 되었고 1894년 1월 10일 마침내 분노한 고부 백성들이 봉기하여 고부 관아를 점령하고 수탈의 상징인 만석보를 파괴하였다. 이렇게 동학농민혁명이 시작되었으며 결국 만석보동학농민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다.

[건립 경위]

조선 후기 동학농민혁명의 도화선이 된 만석보가 일부 파괴된 채로 남아 있어 고부군 농민들이 군수 안길수에게 만석보 완전 철거를 건의하였다. 고부군수 안길수는 민심을 달래기 위하여 1894년 파괴된 채로 방치되어 있던 만석보를 철거하였다. 농민들의 강력한 요구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으로 관의 수탈과 학정에 대한 재발 방지 약속이었다. 1898년(고종 35) 9월 농민들은 안길수의 공적을 기려 만석보 혁파 선정비를 세웠다.

[위치]

만석보 혁파 선정비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이평면 하송리 677에 있다. 이평면사무소에서 신태인 방면으로 지방도를 따라 가면 만석보가 있는 배들평야가 펼쳐진다. 오른쪽에 예동 입구가 나오고 예동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예동복지회관이 나오는데 맞은편 광장 비각(碑閣) 안에 만석보 혁파 선정비가 있다.

[형태]

만석보 혁파 선정비는 일자형 일반 비석이다. 화강암으로 제작되었으며, 비의 높이는 153㎝, 너비는 45㎝, 두께는 20㎝이다. 비석은 비각 안에 있는데 비각은 정면 2칸, 측면 1칸이다. 오른쪽 비석이 만석보 혁파 선정비이며 ‘군수 김후우현 휼민선정비(郡守 金侯佑鉉 恤民善政碑)’와 함께 나란히 서 있다.

[금석문]

만석보 혁파 선정비는 전면에 ‘군수 안후길수 만석보 혁파 선정비 무술구월일(郡守 安候吉壽 萬石洑 革罷 善政碑 戊戌九月日)’이라 새겨져 있으며 나머지는 심한 마모로 인하여 판독이 불가하다.

[현황]

만석보 혁파 선정비는 건립 후 100여 년의 세월이 흘러 비문이 마모되어 판독이 어려운 등 훼손이 심하여지자 1994년 동학농민혁명 100주년을 기념하여 보호를 위한 비각을 세웠다. 비각 옆에는 2016년 건립된 ‘동학농민혁명 최초 봉기 상징 조형물’이 있다.

[의의와 평가]

만석보 혁파 선정비동학농민혁명이 실패로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새로 부임한 전라도 고부군수 안길수에게 고부 백성들이 만석보 완전 철거를 강력히 요구하여 뜻을 이룸으로써 민중들의 항쟁 의지가 살아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유적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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