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300530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적/터
지역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이평면 두지리 191-2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조광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2001년 4월 27일연표보기 - 말목장터와감나무 전라북도 기념물 제110호 지정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21년 11월 19일 - 말목장터와감나무 전라북도 기념물로 변경 지정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24년 1월 18일 - 말목장터와감나무 전북특별자치도 기념물로 변경
소재지 말목장터와감나무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이평면 두지리 191-2 지도보기
성격 봉기 및 진지 터
지정 면적 129㎡
소유자 정읍시
관리자 정읍시
문화재 지정 번호 전북특별자치도 기념물

[정의]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이평면 두지리에 있는 동학농민혁명 당시 고부 농민군의 집결 장소.

[개설]

말목장터는 조선 시대 큰 장(場)이 섰었는데 풍수지리상 말[馬]의 목 부분에 해당하는 형상이라 하여 ‘말목장터’로 불리었다. 말목장터는 현재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이평면 두지리 일대였다. 1894년 1월 10일 밤 사발통문 거사 계획을 실천에 옮기기 위하여 인근 예동(禮洞)에 집결한 농민들이 대열을 정비하여 말목장터로 이동하였다. 말목장터에는 사전에 통문을 받고 각 마을에서 봉기에 참여하기 위하여 모인 많은 농민들이 있었다. 전봉준은 집결한 군중 앞에서 고부군수 조병갑이 자행한 그간의 학정과 수탈에 대하여 설명하고, 이에 맞서 함께 봉기할 것을 역설하였다.

전봉준은 연설을 마친 후 인근 대나무밭에서 죽창을 만들어 무장시킨 뒤 2개 진으로 나누어 1진은 전봉준과 정익서가 인솔하여 전라도 고부군 북부면[정읍시 영원면의 옛 지명] 운학리(雲鶴里)를 거쳐 고부군 뒷모실 방죽으로 진격하여 들어가고, 2진은 김도삼이 인솔하여 전라도 고부군 답내면(畓內面) 산매리(山梅里)와 도계리(道溪里)를 거쳐 뒷모실 방죽 끝에서 전봉준 부대와 합세하여 고부 관아를 일시에 공격하여 점령하였으나 이미 조병갑은 도망치고 없었다. 이로써 동학농민혁명의 서막을 알리는 고부농민봉기가 시작되었다.

고부 관아를 점령한 전봉준은 창고에 쌓인 곡식을 인근 빈민들에게 나누어 주고 억울하게 감옥에 갇힌 농민들을 풀어 주었다. 날이 밝자 전봉준은 조병갑 밑에서 농민을 수탈하였던 아전(衙前)들을 잡아 조사한 후 벌을 내렸다.

전봉준고부 관아에 머물면서 통문을 띄워 고부 군민들에게 동참을 호소하였다. 이에 호응하여 1894년 1월 11일부터 고부 군민들이 모여들기 시작하여 1894년 1월 14일에는 15개 마을에서 수천 명이 모여들었다. 전봉준은 노인과 어린 소년들은 집으로 돌려보내고 장정들만 남게 하였으며 각 마을마다 대표 5명을 선정하여 관리하도록 하였다. 전봉준 등 지도부는 향후 대책을 논의한 후 1894년 1월 17일 본진을 말목장터로 옮겼다.

동학농민군이 고부 관아를 점령하고 말목장터에서 진을 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전라도관찰사 김문현(金文鉉)은 조병갑을 고부군수로 재임용하자고 주장한 책임을 추궁당하는 것이 두려워 중앙에 보고도 하지 않은 채 은밀히 정석진(鄭錫珍) 이하 10여 명의 군졸을 파견하여 전봉준 등 농민군 지도부를 암살하려 하였다. 이 사건에 대하여 장봉선의 『전봉준실기』에는 이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10일 후[1월 20일경] 전주 진영 군위 정석진(鄭錫珍)이 부하 수삼 인을 대동하고 봉준을 면회한 후 해산을 권유하였다. 때마침 수상한 상인 10여 명이 연초포(煙草包)를 부재(負載)하고 시장으로 입내함을 견(見)한 봉준은 그들을 다 결박하고 연초포를 피견(披見)하니 전율(戰慄)할 군기가 입(入)하였으니 이는 틀림없는 정군위의 부하였다. 이 광경을 본 정씨는 도주하다 난민의 죽창 아래 참혹히 죽었다.”

전라도 고부군 출신 선비인 박문규의 『석남역사』에는 “당시 전주 병정(全州兵丁) 16명이 미복(微服)으로 철추(鐵椎)를 몰래 숨기고[隱藏] 두목을 잡으려고 암행하여 내려와서 민요소(民擾所)에 들어섰다. 그런데 장두청(將頭廳)에 대문(大門)이 달렸고 비밀스러운 계획이 있는지를 병정이 어찌 알겠는가? 대장소(大將所)에 출입하는 사람은 모두 왼손 회목에 노끈을 매고 있었다. 전주 병정이 대문 안에 들어서자 수직군(守直軍)들이 포박하였으며 5~6일 간 고통을 주고는 백산(白山)으로 진을 옮기면서 좋게 석방하여 주니 그들은 백배사(百拜謝)를 하였다.”

전라도 부안의 줄포(茁浦)에 살면서 동학농민혁명을 직접 목격한 일본인 파계생(巴溪生)의 보고서인 『전라도고부민요일기(全羅道古阜民擾日記)』에는 “감영은 50명을 변장시키어 동학당 진영 안에 잠입시켜 기회를 보아 3명을 체포하려고 꾀하였으나 오히려 그들에게 정체가 간파되어서 50명이 다 같이 포로가 되었다. 이 싸움 중에 1명의 병사가 즉사하고 이를 이끌었던 자도 살육되었다는 소문이 있다.”라고 적고 있다.

이 사건 이후 동학농민군은 본진을 호위하기 위하여 날랜 장정 13명을 뽑아 더 보강하였다. 이렇게 관에서 전봉준 등 지도부를 암살하려 하자 동학농민군들은 고부군으로 들어오는 사방의 출입을 엄하게 하여 동진강 나루를 건너지 못하게 하였다. 전봉준은 휘하 장령들과 함께 논의하기를 장차 관군이 공격하여 올 터인즉 말목장터는 민가가 밀집되어 있어 백성들의 피해가 우려되니 백산으로 이동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하니 장령들 또한 이 의견이 타당하다 하여 일부 동학농민군들을 백산으로 옮겨 진을 치고 백산성을 쌓는 등 장차 있을 전투에 대비하였다. 말목장터는 동학농민군이 해산한 1894년 3월 13일까지 약 두 달 동안 동학농민군들의 진지였다.

한편 말목장터동학농민혁명 때 이루지 못한 사회 개혁을 재차 추진하기 위하여 1898년부터 무술농민봉기와 기해농민봉기를 일으킨 중심 인물들이 영학계(英學契)를 조직한 장소이다. 당시 말목장터를 중심으로 영국인 선교사가 선교 활동을 폈다. 말목장터에는 고부(古阜), 흥덕(興德), 고창(高敞), 장성(長城), 영광(靈光), 무장(茂長), 함평(咸平) 등지에서 사람들이 모여들었는데 대부분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하였던 사람들이었다. 손화중의 부하였던 최익서(崔益瑞)는 이 사람들을 모아 영학계를 조직하였다. 1899년 4월 18일 손화중 휘하의 최익서, 홍계관, 홍낙관 등과 김개남 휘하의 김문행, 북접 계열의 김낙철 등이 중심이 되어 전라도 17개 지역민들과 함께 ‘보국안민(輔國安民)’을 외치며 의롭게 일어섰다. 비록 뜻을 이루진 못하였지만 기해농민봉기는 동학농민군이 내걸었던 보국안민과 외세 배격을 외치고 일어선 제2의 동학농민혁명이라고 할 수 있다.

이평면사무소 맞은편에는 전봉군이 고부농민봉기 당시 말목장터에 집결하여 있던 농민들에게 일장 연설을 하고 잠시 기대어 쉬었다고 전하는 감나무가 있었다. 감나무 높이는 21m, 둘레 1.8m이고 수령은 180년 정도로 추정된다. 말목장터와감나무는 2001년 4월 27일 전라북도 기념물 제110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고시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어 전라북도 기념물로 변경되었다. 2024년 1월 18일 전북특별자치도 기념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위치]

말목장터와감나무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이평면 두지리 191-2번지에 있다. 말목장터이평면에 있는 옛 장터로 정읍시, 부안군, 태인면을 오가는 길이 만나는 삼거리에 있다.

[현황]

말목장터는 현재 흔적을 찾을 수 없고 동학농민혁명의 최초 집결지임을 알리는 안내판과 감나무 한 그루가 서있다. 이평면사무소 벽면에는 사발통문을 비롯한 동학농민군 벽화가 그려져 있다. 주변에는 말목장터 어울림센터와 말목쉼터가 조성되어 있으며 이평면사무소 삼거리에서 신태인으로 가는 도로 오른쪽에 말목장터 유지비가 세워져 있다. 말목장터에 원래 있던 감나무는 2003년 8월 태풍으로 인하여 쓰러져서 현재는 덕천면에 있는 동학농민혁명기념관 출입문 입구에 방부 처리된 상태로 전시되어 있다. 현재 말목장터에는 새로 심은 감나무가 서 있다.

[의의와 평가]

말목장터전봉준이 고부 농민들을 모아 고부 관아를 습격하기 위하여 집결한 역사적인 장소이다. 말목장터에서 출발한 동학농민군은 고부 관아를 점령하였으며 이후 두 달 동안 동학농민군의 진지 역할을 하였다. 1899년 기해농민봉기의 중심 인물들이 영학계를 조직한 장소이기도 한 말목장터는 혁명의 태동지(胎動址)로 평가 받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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