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3006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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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浚 |
영어공식명칭 | Gim Jun |
이칭/별칭 | 징언(澄彦),장무(壯武)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장순순 |
출생 시기/일시 | 1582년 5월 1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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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605년 - 김준 무과 급제 |
활동 시기/일시 | 1623년 - 김준 죽산부사 부임 |
활동 시기/일시 | 1624년 - 김준 의주부윤 부임 |
활동 시기/일시 | 1625년 - 김준 안주목사 겸 방어사 제수 |
몰년 시기/일시 | 1627년![]() |
추모 시기/일시 | 1632년 - 김준 정충사 배향 |
추모 시기/일시 | 1681년 7월 26일 - 김준 충민사 배향 |
출생지 | 고부 금정리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농소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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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임|활동지 | 의주 - 북한 평안북도 의주시 |
부임|활동지 | 안주 - 북한 평안남도 안주시 |
묘소|단소 | 김준 묘소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농소동 |
사당|배향지 | 정충사(旌忠祠)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흑암신흥길 67-2[흑암동 597]![]() |
사당|배향지 | 충민사(忠愍祠) - 북한 평안남도 안주군 |
성격 | 무신 |
성별 | 남성 |
본관 | 언양 |
대표 관직 | 안주목사 |
[정의]
조선 후기 정읍 출신의 무신.
[가계]
김준(金浚)[1582~1627]의 본관은 언양(彦陽)이며, 자는 징언(澄彦)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어모장군 김수건(金守乾)이고, 할아버지는 서부참봉 김원(金轅)이다. 아버지는 김광필(金匡弼)이고, 어머니는 함양 박씨(咸陽 朴氏)이다. 부인은 임실현감 남철(南澈)의 딸 의령 남씨(宜寧 南氏)이고, 아들은 김진성(金振聲)·김유성(金有聲)·김계성(金啓聲)·김태성(金泰聲)이다. 사위는 목사 민도(閔燾)와 나수소(羅守素)이다.
[활동 사항]
김준은 1582년(선조 15) 5월 10일 고부 금정리(金井里)[현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농소동]에서 태어났다. 1605년(선조 38) 무과에 합격한 뒤 부장과 선전관을 거쳐 교동현감을 역임하였다. 이후 어머니가 사망하여 삼년상을 치른 뒤에는 고부로 낙향하여 광해군 대에는 관직에 나아가지 않았다.
김준은 1623년(인조 원년) 인조반정에 가담하여 도총부도사에 임명되었다가 경력(經歷)을 거쳐 죽산부사로 부임하였다. 1624년 이괄(李适)의 난 진압에 공을 세우고 의주부윤이 되었으며, 1625년에는 안주목사 겸 방어사가 되었다. 1627년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안주성에서 절제사 남이흥(男以興)과 함께 후금군에 맞서 싸우다가 아들 김유성과 함께 전사하였다.
[묘소]
김준의 묘소는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농소동에 있다.
[상훈과 추모]
김준이 사망하자 인조는 좌찬성을 추증하고 장무(壯武)라는 시호를 하사하였다. 1632년 지역민들이 두승산(斗升山) 아래에 사당을 세우고 나라를 위하여 순절한 동향 사람 송상현(宋象賢)·신호(申浩)와 함께 김준을 배향하였고, 1657년(효종 8)에 ‘정충사(旌忠祠)’라는 편액이 하사되었다. 정충사는 1868년(고종 5)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1964년 지금의 정읍시 흑암신흥길 62-7[흑암동 597]에 복원되었다. 정충사는 1985년 8월 16일 전북특별자치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1681년(숙종 7) 7월 26일에는 안주 사람들이 사당을 세워 김준을 배향하였는데, 1682년에 ‘충민사(忠愍祠)’라는 편액이 하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