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진수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300700
한자 白珍守
영어공식명칭 Baek Jinsu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영원면 은선리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장순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03년 12월 1일연표보기 - 백진수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32년 8월 - 백진수 위조지폐 500원을 제작하여 형 백정기에게 전달
활동 시기/일시 1936년 9월 11일 - 백진수 일제 경찰에 체포
활동 시기/일시 1937년 1월 20일 - 백진수 공주지방법원에서 징역 10월 선고
몰년 시기/일시 1946년 3월 24일연표보기 - 백진수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90년연표보기 - 백진수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출생지 은선리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영원면 은선리 지도보기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남성

[정의]

일제 강점기 정읍 출신의 독립운동가.

[가계]

백진수(白珍守)[1903~1946]의 본관은 수원(水原)이며, 아버지는 백남일(白南一), 어머니는 윤문옥(尹文玉)이다. 형은 백정기(白貞基)이다.

[활동 사항]

백진수는 1903년 12월 1일 지금의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영원면 은선리에서 태어났다. 1932년 8월 인쇄공 조명호(趙明鎬)·박창식(朴昌植)·고광직(高光職) 등과 몰래 위조지폐를 인쇄·제작하여 위폐(僞幣) 500원을 중국 동삼성(東三省) 해림시(海林市)에 있는 형 백정기에게 독립운동 자금으로 전달하였다.

1933년 3월 17일 남화한인청년연맹 소속 백정기는 정화암(鄭華岩)·원심창(元心昌)·이강훈(李康勳) 등과 중국 상해의 육삼정(六三亭)에서 침략의 하수인으로 지목된 주중 일본공사 아리요시 아키라[有吉明]을 폭살하려다가 계획이 거사 직전에 발각되어 실패로 돌아갔다. ‘육삼정 의거’라 불리는 이 사건으로 백정기는 거사 직전에 체포되어 일본 나가사키[長崎]형무소로 이감되었고, 백진수를 비롯한 가족들은 일제 경찰에 연행되어 백정기의 여죄를 조사한다는 명목으로 정읍경찰서에 구금되었다가 10개월 만에 석방되었다.

백진수는 1934년 6월 6일 일본 나가사키형무소장으로부터 형 백정기가 옥중에서 사망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단신으로 나가사키로 건너가서 형의 시신을 찾아 안장하고 귀국한 후 실의와 좌절의 나날을 보냈다. 1936년 9월 11일 백진수는 위조지폐 제작 당시 동지였던 박창식이 위폐를 사용하려다가 발각되는 바람에 조명호·고광직과 함께 일제 경찰에 체포되었고, 1937년 1월 20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주화 위조 방조죄로 징역 10월형을 선고 받고 옥고를 치렀다. 백진수는 1946년 3월 24일 고문 후유증이 악화되어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백진수의 공적을 기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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