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300886
한자 古阜鄕校
이칭/별칭 대성전,서재,양사재,고부리,고부관아
분야 종교/유교
유형 유적/건물
지역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고부면 교동4길 18[고부리 166]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동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이전 시기/일시 1597년연표보기 - 고부향교 이건
개축|증축 시기/일시 1794년 - 고부향교 중건
훼철|철거 시기/일시 1910년 - 구부향교 동재 훼철
개축|증축 시기/일시 1962년 - 고부향교 서재 중건
개축|증축 시기/일시 1966년 - 고부향교 외삼문 신축
개축|증축 시기/일시 1970년 - 고부향교 대성전 동무, 서무 보수
개축|증축 시기/일시 1981년 - 고부향교 홍살문 이건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84년 4월 1일 - 고부향교대성전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74호 지정
개축|증축 시기/일시 1988년 - 고부향교 양사재 중건
개축|증축 시기/일시 1991년 - 고부향교 서재, 내삼문 중건
개축|증축 시기/일시 1992년 - 고부향교 직사 신축
개축|증축 시기/일시 2003년 - 고부향교 동무 중건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21년 11월 19일 - 고부향교대성전 전라북도 문화재자료로 변경 지정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24년 1월 18일 - 고부향교대성전 전북특별자치도 문화재자료로 변경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24년 5월 17일 - 고부향교대성전 전북특별자치도 문화유산자료로 변경
현 소재지 고부향교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고부면 교동4길 18[고부리 166]지도보기
원소재지 고부향교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고부면 용흥리 해정마을지도보기
성격 향교
양식 전학후묘
정면 칸수 5칸[명륜당]|5칸[대성전]|3칸[서재]|4칸[양사재]|3칸[동·서무]
측면 칸수 3칸[명륜당]|3칸[대성전]|2칸[서재]|1.5칸[양사재]|1칸[동·서무]
소유자 향교재단
관리자 향교재단

[정의]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고부면 고부리에 있는 조선 시대 향교.

[개설]

향교는 성현을 봉사하고 교육을 담당하는 관립 교육 기관이다. 조선 시대에는 각 고을마다 하나씩 세웠는데 고을의 규모에 따라 대설위(大設位), 중설위(中設位), 소설위(小設位)로 구분하여 모시는 선현들의 수가 달랐다. 고부향교(古阜鄕校)는 정읍 지역에서 가장 큰 중설위 향교로 대성전과 동·서무에 공자와 4성, 공문 10철(孔門十哲)과 송조 6현(宋朝六賢), 우리 나라의 동방 18현(十八賢)을 배향하였다. 현재는 대성전에 공자와 4성, 동방 18현만 배향하고 있다. 향교의 정원은 법적으로 부·목 90명, 도호부 70명, 군 50명, 현 30명인데 실제로는 정원 외의 교생들이 많았다. 1790년대 『호남읍지』의 「고부읍지」에 수록된 고부향교의 정원은 50명, 정원 외 교생은 30명이다. 향교에는 공자가 글을 가르치던 곳인 행단(杏壇)을 상징하기 위하여 은행나무를 심었는데 고부향교에 있는 은행나무는 수령이 2022년 현재 약 420년으로 오래되고 아름다워 보호수로 관리되고 있다.

고부향교대성전은 1984년 4월 1일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74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고시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어 전라북도 문화재자료로 변경되었다. 2024년 1월 18일 전북특별자치도 문화재자료로 변경되었다. 2024년 5월 17일 국가유산청의 「국가유산기본법」 시행에 따라 전북특별자치도 문화유산자료로 바뀌었다.

[위치]

고부향교는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고부면 교동4길 18[고부리 166]에 있다. 교동마을 고부초등학교[고부관아터] 옆이다.

[변천]

고부향교의 창건 연대는 분명치 않고, 임진왜란 때 불타서 1597년(선조 30) 현 위치인 고부리 교동마을 옛 고부관아[현 고부초등학교] 옆에 중건되었다. 이전에는 고부면 용흥리 해정마을에 있었다. 1794년(정조 18) 고부군수 김재화가 중건하였다. 1910년 일제에 의하여 동재가 향교 일부 부지와 함께 고부초등학교에 편입되어 훼철되었다. 서재는 일제 강점기 일본인 소유였다가 광복 후 적산가옥이 되어 1962년 전교 전용록이 계금(契金)으로 사들여 헐고 다시 지었다. 외삼문은 본래 없다가 1966년 건립되었다. 1970년 대성전과 동서 양무를 대보수하고 수리비를 세웠다. 1981년 외삼문 앞에 있던 홍살문을 현 위치로 옮겼다. 1988년 동재를 양사재로 중건하였다. 당시 지은 양사재 상량문이 문헌에 전한다. 1991년 서재를 다시 짓고 내삼문을 중건하였다. 1992년 외삼문 앞에 직사(直舍)를 신축하고 준공비를 세웠다. 2003년 동무가 낡아서 재건축하였다. 우리나라 성현을 대성전에 올려야 한다는 의견이 있어 1975년 동방 18현을 대성전으로 이안하였다. 2004년 공문 10철과 송조 6현의 위패를 매안하고 동방 18현을 동서 양측에 2행 종향으로 모셨다.

[형태]

고부향교의 건물 배치는 강학 공간이 앞에 오고 제향 공간이 뒤에 있는 전학후묘(前學後廟) 형태이다. 홍살문을 지나면 흥학비 등의 비석군이 있고 외삼문 우측에 강당인 명륜당이 있다. 명륜당 좌편에는 서재가 있고, 우편 위쪽으로 양사재가 있다. 1790년대 「고부읍지」에 의하면 양사재는 본래 향교 서편에 있었고, 남쪽에는 현재는 없지만 사마재가 있었다. 동재는 고부초등학교로 편입되어 헐렸다.

명륜당 위쪽으로 가파르고 높은 계단을 오르면 내삼문이 있고 내삼문을 지나면 배향 공간 대성전과 동·서무가 있다. 명륜당에서 대성전 앞으로 바로 오르는 계단이 있고, 완만하게 양사재 쪽으로 돌아서 올라가는 계단이 있다. 향교 입구 외삼문 밖 좌편에는 고직사가 있다. 명륜당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이다. 서재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으로 매우 큰 ‘서재’ 편액이 걸려 있다. 양사재는 정면 4칸에 측면 1.5칸이며, ‘양사재’ 편액이 있다. 대성전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이며, 동무와 서무는 각각 정면 3칸, 측면 1칸, 맞배지붕이다.

[현황]

고부향교는 봄·가을에 석전제를 지내고, 매달 초하루·보름 삭망에 분향을 올리고 있다. 고부향교는 향교재단에서 소유 및 관리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고부 지역은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난 곳으로 고부향교는 조선 후기 고부 향촌 사회의 사족과 동학농민혁명을 이해하는 데 의미가 크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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