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3009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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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彌勒佛敎 |
분야 | 종교/신종교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태인면 독립길 28[태흥리 282-1]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재영 |
[정의]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태인면 태흥리에 있는 증산교 계통의 신종교 교당.
[개설]
미륵불교의 창교주는 수산 정인표(鄭寅杓)[1897~1955]이다. 정인표는 전북특별자치도 완주군 소양면 대승동에서 태어났다. 미륵산에 입산하여 진리를 깨닫고 세상 모든 사람을 올바르게 구제하여야겠다는 큰 뜻을 품었다. 정인표가 처음 득도한 날인 1934년 2월 21일이 미륵불교의 원년이다.
미륵불교는 원래 조철제가 정읍시 태인면 도챙이고개[道昌峴]에서 세운 무극교에서 비롯되었다. 조철제는 계화도 간척 사업과 함경도 일대에서 벌채 사업을 시행하였으나 실패하고 일부 신도들과 함께 경상도로 떠났다. 조철제가 떠난 후 남은 신도들 가운데 정인표, 정홍규, 장득원(張得源) 등이 1934년에 정인표를 대표로 창시한 종교가 미륵불교이다. 표면상 ‘미륵’을 내세우고 있지만 기실은 증산교의 창시자 증산 강일순을 신앙하는 종교 단체이다.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태인면 태흥리에 있는 황금사는 태인 미륵불교 총본부이다.
[설립 목적]
미륵불교는 정인표가 1934년 1월 8일 모악산 미륵당에서 3일간의 치성 끝에 신명을 받고 도통을 이룬 종교적 체험에 의하여 창립하였지만, 일제하에서 민족 운동이라는 목표도 있었다.
[변천]
미륵불교의 창시자 정인표는 일제 강점기에 신인동맹(神人同盟)이라는 비밀 결사체를 조직하였다. 이러한 사실이 일제에 발각되어 교주 정인표와 정인표를 따르던 42명의 제자들이 1938년에 일거에 검거되었다. 이들은 심한 문초를 약 4년 동안이나 당하다가, 1943년 9월에야 재판에 회부되었다. 1997년 정인표에게 애족장이 수여되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미륵불교에서는 아동을 교육하기 위하여 해방 후 인재고등공민학교를 설립하고, 1951년에는 명륜고등공민학교를 인수하는 등 학교 교육에 진력하였다.
[현황]
2022년 정읍시 문화예술과 집계 자료에 따르면 미륵불교의 신도는 모두 25명이다.
[의의와 평가]
신인동맹 가담자들은 미신 사교, 사이비종교 단체라는 이유로 독립 유공자로 지정받지 못하였으나, 1997년 독립 운동의 공적이 인정되어 가담자 13명에게 애족장이 수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