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301153
영어공식명칭 Birthplace and Shrine of Na Yong-gyun, Jeongeup
분야 생활·민속/생활
유형 유적/건물
지역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영원면 운학2길 14-6[운학리 164-1]|운학2길 6[운학리 166-1]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남해경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890년연표보기 - 정읍 나용군 생가 건립
문화재 지정 일시 2006년 9월 19일연표보기 - 정읍 나용균 생가와 사당 국가등록문화재 제276호 지정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21년 11월 19일 - 정읍 나용균 생가와 사당 국가등록문화재로 변경 지정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24년 5월 17일 - 정읍 나용균 생가와 사당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변경
현 소재지 정읍 나용균 생가와 사당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영원면 운학2길 14-6[운학리 164-1]지도보기|운학2길 6[운학리 166-1]지도보기
성격 가옥|사당
양식 목조
정면 칸수 6칸[안채]|5칸[사랑채]|6칸[재실]|3칸[대문간채]
측면 칸수 4칸[안채]|2.5칸[사랑채]|3칸[재실]|2칸[대문간채]
소유자 나영호 외 2인
관리자 정읍시
문화재 지정 번호 국가등록문화유산

[정의]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영원면 운학리에 있는 개항기의 가옥과 사당.

[개설]

정읍 나용균 생가와 사당(井邑 羅容均 生家와 祠堂)은 전북특별자치도 정읍 출신으로 독립운동가이자 정치가인 백봉(白峰) 나용균(羅容均)[1895~1984]이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이다. 정읍 나용균 생가와 사당은 2006년 9월 19일 국가등록문화재 제276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고시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어 국가등록문화재로 변경되었다. 2024년 5월 17일 국가유산청의 「국가유산기본법」 시행에 따라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바뀌었다.

[위치]

정읍 나용균 생가와 사당은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영원면 운학2길 14-6[운학리 164-1]과 운학2길 6[운학리 166-1]에 있다. 천태산의 야트막한 구릉지인 정읍시 영원면 운학리에 있다. 생가는 마을 안쪽에 있고 사당은 마을 입구에 있다. 사당 뒤쪽으로 난 오솔길은 남쪽으로 고부, 북쪽으로 김제, 부안과 연결된다. 동학농민운동의 발단이 된 고부봉기 때 농민군들이 진격한 길이다. 사당 뒤편의 대나무 숲에서는 죽창을 만들었다고 한다.

[변천]

정읍 나용균 생가는 1890년 건립되었으며 사당은 나용균이 1941년 선조들의 묘소를 돌보기 위하여 건립하였다고 한다. 대목장 심사일(沈士一)과 고택영(高澤永) 등이 공사에 참여하였다. 현재는 사랑채, 문간채, 창고, 화장실만 남아 있으며 안채는 주춧돌만 남아 있다.

[형태]

정읍 나용균 생가는 안채와 사랑채를 좌우로 배치하고 담장으로 구분하였으며 협문을 설치하여 연결하고 있다. 안채는 정면 6칸, 측면 4칸으로 부엌, 방, 대청, 웃방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식모방과 곳간이 있었다. 사랑채는 정면 5칸, 측면 2.5칸인데 방, 대청, 건넌방, 부엌으로 구성되었다. 이후 증축과 개축을 통하여 부엌을 방으로 개조하였으며 책방과 수납 공간을 증축하였다. 문간채는 하인이 거주하던 방, 손님이 사용하는 머리방, 부엌, 욕실, 광, 문간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구조는 2단의 기단 위에 자연석 덩벙주춧돌을 놓고 두리기둥과 방형 기둥을 혼용하여 세운 다음 창방과 결구하고 있다. 지붕은 우진각지붕으로 되어 있다.

사당은 문간채와 일곽으로 이루어진 토석 담장 안에 재실이 있다. 재실은 정면 6칸, 측면 3칸으로 좌우에 방이 있고 중앙 2칸은 대청으로 되어 있으며 전면과 측면 1칸은 마루로 되어 있다. 구조는 2단의 장대석 기단 위에 고복형 주춧돌을 놓고 두리기둥을 세운 다음 창방과 결구하고 있다. 지붕은 겹처마에 팔작지붕이다. 대문간채는 정면 3칸, 측면 2칸인데 문을 중심으로 좌우에 방이 있다. 구조는 낮은 콘크리트 기단 위에 자연석 덤벙주춧돌을 놓고 두리기둥을 세운 다음 창방과 결구하고 있다. 지붕은 홑처마에 중앙은 맞배지붕이고, 좌우측 방은 팔작지붕 양식이다.

[현황]

정읍 나용균 생가와 사당의 보존 상태는 비교적 양호한 편이다. 현재 사랑채, 문간채, 창고, 화장실이 남아 있으며 안채는 주춧돌이 남아 있다.

[의의와 평가]

정읍 나용균 생가와 사당은 독립운동가이자 정치가인 나용균이 어렸을 때 지내던 집으로 정읍 지방 근대기 상류 가옥을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이다. 또한 대목수 심사일과 고택영이 참여한 건축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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