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재와 두 개의 돌」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301206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북면 장학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영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수록|간행 시기/일시 1991년 - 「장재와 두 개의 돌」 『정읍의 전설』에 수록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01년 9월 25일 - 「장재와 두 개의 돌」 『정읍의 전설』 증보판에 수록
관련 지명 장재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북면 장학리 지도보기
성격 설화|지명 유래 전설
주요 등장 인물 장재|중|마을 사람들
모티프 유형 지명 유래담|구두쇠 영감|암석

[정의]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북면 장학리에서 두 개의 돌과 관련하여 전하여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장재와 두 개의 돌」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북면 장학리 장재(長才)마을 입구에 세워져 있는 큰 돌 두 개에 얽힌 이야기이다. 돌 하나는 수놈, 하나는 암놈으로 부른다. ‘장재’라는 사람이 마을 입구에 큰 돌 두 개를 묻으면서 마을의 이름이 ‘장재동’이 되었다고 전한다.

[채록/수집 상황]

「장재와 두 개의 돌」은 정읍 출신 시인이자 수필가인 김동필(金東必)[1939~2006]이 1989년 채록하기 시작하여 1991년에 간행한 『정읍의 전설』에 수록되었고, 2001년 9월 25일 간행한 『정읍의 전설』 증보판에도 수록되었다.

[내용]

정읍시 북면 장학리 한 마을에 장재라고 하는 큰 부자가 살고 있었는데, 이름난 부자였지만 성품이 곱지 않고 가난한 사람을 전혀 돕지 않는 인색한 사람이었다. 하루는 시주를 청하는 중이 찾아왔다. 장재는 시주는커녕 모래를 한 바가지 퍼서 중의 바랑 속에 부어서 곡식과 섞이게 하고, 대쪽을 중의 머리에 씌어 창피를 주었다.

중은 솟아오르는 분노를 누르고 장재에게 더 큰 부자가 되는 방법을 알려 준다고 하였다. 장재는 귀가 번쩍 뜨여 중의 머리에서 대쪽도 벗기고 모래가 섞인 곡식도 바랑에서 꺼내어 쌀로 가득 채워 주었다. 중은 부자에게 이사 오기 전의 옛집을 찾아가면 큰 돌 두 개가 있는데, 하나는 부엌 바닥에 있고, 하나는 마루 밑에 있으니 두 돌을 파다가 마을 어귀에 사람들에게 잘 보이도록 묻으라고 하였다.

장재가 중의 말대로 하였더니 마을 사람들은 점점 부유해졌는데 장재는 점점 가난하여지고 시름시름 병도 앓기 시작하였다. 장재가 점쟁이를 찾아가 물어보니 예전에 찾아왔던 중은 마을을 지키는 신인데, 마을을 지키는 신의 노여움을 사서 좋지 않은 일들이 생긴 것이라고 하였다. 결국 장재는 몇 년이 지나지 못하여 세상을 뜨고 집안은 완전히 망하였다. 장재가 돌을 가져다 놓았으므로 마을 이름을 ‘장재동’이라고 하였다.

[모티프 분석]

성격이 고약한 구두쇠 설화는 전국적으로 광포된 설화이다. 구두쇠 설화들은 고약한 성격을 고치게 되는 개과천선형이나 중을 박대하여 벌을 받는 유형이 많다. 그런데 「장재와 두 개의 돌」은 구두쇠 화소에 정읍시 북면 ‘장재동’의 지명 유래담을 더하기 위하여 암석 모티프를 차용하고 있는 점이 특징적이다. 전국적으로 구두쇠 설화는 많지만 두 개의 돌을 통하여 구두쇠를 벌하고, 마을의 이름과 정체성을 찾는 「장재와 두 개의 돌」은 정읍 지역만의 고유성을 보여 주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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