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봉산의 명당」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301212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옹동면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영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수록|간행 시기/일시 1991년 - 「비봉산의 명당」 『정읍의 전설』에 수록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01년 9월 25일 - 「비봉산의 명당」 『정읍의 전설』 증보판에 수록
관련 지명 비봉산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옹동면 상산리 산281 지도보기
성격 설화|명당 설화
주요 등장 인물 김현철|김현철의 부인|벽송당
모티프 유형 명당|발복담

[정의]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옹동면 비봉리에서 비봉산의 명당과 관련하여 전하여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비봉산의 명당」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옹동면 비봉리에서 수암(守岩)마을 뒤쪽에 여러 산봉우리가 병풍처럼 둘러져 있는 비봉산(飛鳳山)의 명당과 관련하여 전하여 내려오는 이야기이다. 비봉산에는 귀소형(歸巢形)과 포란형(抱卵形) 명당이 있는데, 각각 ‘비봉귀소’, ‘비봉포란’으로 불린다. 또한 산의 높낮이에 따라 상봉, 중봉, 하봉이 있다. 이야기에 등장하는 동성(東星) 김현철(金鉉哲)은 근화제약[현 알보젠코리아]의 전신인 근화항생약품의 설립자이다.

[채록/수집 상황]

「비봉산의 명당」은 정읍 출신 시인이자 수필가인 김동필(金東必)[1939~2006]이 1989년 채록하기 시작하여 1991년에 간행한 『정읍의 전설』에 수록되었고, 2001년 9월 25일 간행한 『정읍의 전설』 증보판에도 수록되었다.

[내용]

비봉산 중봉 포란형의 명당에 동성 김현철의 묘가 있었는데, 경기도 광주로 이장하였다가 다시 1년 만에 비봉산 중봉으로 돌아왔다. 원래 김현철의 묏자리는 벽송당이라는 유명한 지관이 잡아 준 이름난 명당이었다. 벽송당이 정읍 산내면칠보면 경계선에 있는 구들재에서 종이로 만든 매를 바람에 띄운 뒤 종이 매가 떨어진 자리를 잡은 것이다.

김현철의 묘를 경기도 광주로 옮긴 뒤, 어느 날 김현철의 부인의 꿈에 남편이 나타났다. 김현철은 부인에게 너무 추워서 견딜 수가 없으니 자신을 본래 집으로 보내 달라고 하였다. 또한 이 하나가 없어져서 먹기가 힘드니 제발 자신의 이를 찾아 달라고 하였다. 이에 김현철의 부인이 경기도 광주에서 남편의 유골을 수습하여 옛 묏자리가 있던 정읍시 옹동면 비봉산으로 옮겼다. 벽송당이 옛날 3정승 6판서가 나올 자리라고 예언하였던 곳이었다. 옮기면서 중봉의 묏자리를 파 보니 땅속이 모두 아름답게 금빛이 감돌았고, 인부 하나가 거기에서 이 하나를 주웠다. 김현철의 묘는 비봉산 중턱에 있고, 묘비석은 수암마을 입구에 세워져 있다.

[모티프 분석]

「비봉산의 명당」은 기본적인 명당 화소를 차용하여 ‘비봉산이 명당’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명당자리가 아닌 곳[경기도 광주]으로 묘소를 이장하였을 때의 문제점을 부각시켜 상대적으로 비봉산이 명당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다만 전형적인 명당 화소는 발복으로 이어지는데, 일반적으로 후일담은 약한 편이다. 「비봉산의 명당」에서도 김현철의 묘소가 비봉산 명당자리에 있기 때문에 어떤 복을 받았는지에 대한 설명은 이야기에서 생략되고 있다. 이야기의 주인공인 김현철 집안의 현 상황 자체가 이미 충분히 발복한 결과이기 때문에 굳이 설화를 통하여 서사화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였을 가능성이 크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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