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각교와 최 숙빈」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301236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태인면 태창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세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수록|간행 시기/일시 1991년 - 「대각교와 최 숙빈」 『정읍의 전설』에 수록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01년 9월 25일 - 「대각교와 최 숙빈」 『정읍의 전설』 증보판에 수록
관련 지명 대각교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태인면 태창리 지도보기
성격 전설|설화
주요 등장 인물 민유중|민유중의 딸|민유중의 부인|거지 소녀
모티프 유형 지인지감

[정의]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태인면 태창리에 있는 대각교와 관련하여 전하여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대각교와 최 숙빈」은 인현왕후(仁顯王后) 민씨(閔氏)[1667~1701]와 영조(英祖)[1724~1776]의 어머니 숙빈 최씨(淑嬪 崔氏)[1670~1718]가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태인면 태창리에 있는 대각교(大脚橋)에서 만난 인연에 대한 설화이다. 천한 신분에서 왕비가 되었던 숙빈 최씨의 신분 상승 이야기와 조선 후기의 자선가 박잉걸(朴仍傑)[1676~1766]이 만든 대각교의 유래담이 함께 전한다.

[채록/수집 상황]

「대각교와 최 숙빈」은 정읍 출신 시인이자 수필가인 김동필(金東必)[1939~2006]이 1989년 채록하기 시작하여 1991년에 간행한 『정읍의 전설』에 수록되었고, 2001년 9월 25일 간행한 『정읍의 전설』 증보판에도 수록되었다.

[내용]

대각교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태인면 태창리에 있는 다리이다. 칠보면 백암리에 살던 박잉걸이라는 사람이 사재(私財)를 털어 만들었다고 한다. 숙종(肅宗)[1661~1720] 대 둔촌(屯村) 민유중(閔維重)[1630~1687]이 영광군수로 부임하러 가는 도중 대각교에서 쉬어 가게 되었다. 옆에는 여덟 살 된 딸과 함께 민유중의 부인이 있었다. 마침 민유중의 가족 앞으로 거지 소녀가 지나가고 있었는데, 옷은 남루하고 누추하나 용모가 단정하고 총명하여 보였다. 게다가 소녀는 민유중의 어린 딸과 모습이 매우 닮아 있었다. 부인이 소녀에게 이름과 부모와 집안 환경을 묻자, 성은 최씨(崔氏)요, 부모님은 돌아가신 지 오래되었으며, 의지할 곳 없는 고아라고 하였다. 민유중의 부인은 자신의 딸과 무척 닮은 소녀가 가여워서 데리고 함께 영광으로 갔다. 그 뒤 글공부와 예의범절을 가르치며 친딸과 똑같이 생각하며 길렀다.

소녀는 태도가 명민하였고 재주는 뛰어났으며 외모도 아름다웠다. 수년 후 민유중이 승진되어 한양으로 올라가게 되었을 때에도 소녀만은 같이 데리고 갔었다. 이 무렵 숙종의 첫 부인인 인경왕후(仁敬王后)[1661~1680]가 죽자 다시 맞이한 왕후 민씨(閔氏)가 바로 민유중의 딸이었다. 그때도 인현왕후 민씨는 대각교에서 얻은 최씨를 옆에 두고 있었다. 얼마 후 숙종이 장희빈(張禧嬪)[1662~1701]에게 미혹되어 결국 인현왕후가 궁에서 쫓겨나게 되었다. 최씨는 인현왕후의 안위를 위하여 매일 삼경(三更)이 되면 천지신명에게 기도를 올렸다. 어느 날 밤, 최씨가 여느 날처럼 인현왕후를 위하여 기도를 올리고 있는데, 때마침 암행(暗行)에 나섰던 숙종이 최씨를 보게 되었다. 숙종은 옛 주인을 사모하는 갸륵한 정성에 감동하여 최씨를 자신의 곁에 두었다. 이후 장희빈의 악행을 알게 된 숙종이 장희빈에게 사약을 내려 죽게 하고 다시 인현왕후를 복위시켰다. 최씨는 상궁에서 숙빈(淑嬪)으로 승격되었고, 최씨가 숙종을 모시며 낳은 아들이 영조이다.

이후 숙빈 최씨는 고향인 태인현의 현감에게 명하여 친척들을 조사하였다. 그러나 친척들을 한 사람도 찾을 수 없었으며 부모의 묘까지도 찾을 길이 없었다. 숙빈 최씨태인현 사령(使令)의 딸이었다는 말이 있으나 자세히 알 길은 없다. 다만 『숙종실록(肅宗實錄)』에 의하면 “숙종 20년(1694) 9월 13일 영조를 낳았으며 숙종 44년(1718) 3월 9일 졸하니 장례로 우송(優送)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1728년(영조 4) 박필현(朴弼顯)[1680~1728]으로 인한 난리가 일어났을 때 태인현을 관대하게 보아 준 것은 영조의 어머니 고향이었기 때문이라고 전하여진다. 숙빈 최씨와의 인연을 지닌 대각교는 근대에 와서 서울과 목포 간의 국도가 위쪽으로 나면서 폐교(廢橋)가 되고 말았다.

[모티프 분석]

「대각교와 최 숙빈」의 모티프는 ‘지인지감(知人之鑑)’이다. 지인지감은 사람을 알아볼 수 있는 안목이며, 훌륭한 인물의 능력 중 하나이다. 남루한 옷차림의 거지소녀의 총명함을 알아본 민유중이 소녀를 딸의 시녀로 집안에 들였고, 훗날 딸과 딸의 시녀가 인현왕후와 숙빈 최씨가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인현왕후와 숙빈 최씨의 인연의 매개가 된 장소가 바로 정읍시 태인면 태창리에 있는 대각교이다. 설화의 배경이 된 대각교박잉걸이라는 인물의 설화와도 연결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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