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301296
한자 『鰲峯集』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문헌/전적
지역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영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간행 시기/일시 1695년연표보기 - 『오봉집』 간행
소장처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연세로 50[신촌동 134]
소장처 국립중앙도서관 - 서울특별시 서초구 반포대로 201[반포동 60-1]
소장처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 서울특별시 관악구 관악로 1[신림동 산56-1]
성격 고도서|문집
저자 김제민
간행자 이익태(李益泰)
권책 3권 3책
행자 10행 20자
규격 22.0㎝[세로]|16.7㎝[가로]
어미 잡어미
권수제 오봉선생집(鰲峯先生集)
판심제 오봉유고(鰲峯遺稿)

[정의]

1695년 간행된 조선 전기 정읍 출신 문신인 김제민의 문집.

[저자]

김제민(金齊閔)[1527~1599]은 조선 전기 문신으로 본관은 의성(義城)이고, 자는 사효(士孝), 호는 오봉(鰲峯), 시호는 충강(忠剛)이다. 아버지는 김효(金孝)이며, 일재(一齋) 이항(李恒)의 문인이다. 1573년(선조 6) 식년문과(式年文科)에 을과(乙科)로 급제하여 형조의 낭관(郎官)을 거쳐 화순현감과 순창군수를 역임하고, 1586년에 전라도도사를 지낸 뒤에 병으로 사퇴하였다.

1592년(선조 25)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모집하여 왜군을 맞아 싸웠는데, 김천일(金千鎰), 고경명(高敬命)과 더불어 ‘호남의 삼현(三賢)’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전쟁 후에 고향 전라도 정읍현으로 돌아와 독서당을 짓고 후학 양성과 학문 연구에 전념하였는데, 특히 사마천의 『사기』에 정통하였고 많은 저서를 내었다.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덕천면도계서원(道溪書院)에 아우 김재안(金齋顔), 손자 김지수(金地粹)와 같이 제향되었다.

[편찬/간행 경위]

김제민의 시문은 1682년 김제민의 증손자 김도기(金道器)가 공주목사 이익태(李益泰)[1633~1704]에게 간행을 부탁하고, 현손자 김인손(金麟孫)과 김귀손(金龜孫)이 1684년 윤증(尹拯)에게 서문을 받는 등 문집을 간행하려고 노력하였으나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 후 이익태가 1694년 가을에 제주목사로 부임하면서 간행을 준비하여 1695년 3월 제주에서 목판으로 『오봉집』을 간행하였다. 초간본인 1694년 본은 현재 전하지 않는 듯하고, 1694년 본을 헌종 연간에 후쇄한 것이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목판은 정읍의 도계서원에 보존되어 있다.

『오봉집』 초간본의 구성은 시를 수록한 「오봉유고(鰲峯遺稿)」 1권과 문을 수록한 「오봉선생집(鰲峯先生集)」 3권, 윤증의 서문과 이익태의 발문, 윤순거(尹舜擧)의 묘갈명으로 추측되는데, 「오봉선생집」은 권수 제목이 ‘오봉집비명(鰲峯集碑銘)’과 ‘오봉유고(鰲峯遺稿)’로 되어 있어 일치하지 않는다. 이후 문집은 중간되지 않고, 초간본에 김제민의 행장(行狀)과 시장(諡狀), 묘지명(墓誌銘) 및 목록(目錄) 등을 추각하거나 인행하여 증보하고 편차를 조정한 이본이 전하고 있다.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장본은 권수에 송환기(宋煥箕)가 1804년에 지은 행장과 권미에 1829년에 증직된 관계 기록을 모은 속집이 부편되어 있다.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장본에 윤정현(尹定鉉)이 1854년에 지은 시장이 수록되지 않은 것으로 미루어 간행 시기는 1829년에서 1854년경으로 추측된다. 국립중앙도서관장본은 윤증의 서문을 삭제하고 윤정현의 시장을 추가하였으며,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장본은 윤증의 서문과 윤순거의 묘갈명을 삭제하고, 윤정현의 시장을 추가하였는데, 그 편차는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장본과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장본이 서로 다르게 되어 있다. 증보와 재편이 1854년에서 1884년 사이에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장본은 윤증의 서문을 제외한 부록 문자인 시장과 행장, 묘갈명을 수록하였으며, 권수에 목록을 붙이고 권미에 송병선(宋秉璿)이 1884년에 지은 묘지명(墓誌銘)을 추가하였다. 목록은 묘지명과 함께 추가한 것으로 보이므로 1884년 이후 증보하였을 것이다. 『오봉집』의 저본은 1695년 간행한 초간본을 헌종 연간에 후쇄한 것으로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장본이다.

[형태/서지]

『오봉집』은 원집 3권, 속집 합 3책으로, 윤증(尹拯)이 지은 서(序)와 송환기(宋煥箕)가 지은 행장(行狀)이 있다. 각 면(面)은 10행 20자이고 목판본이다. 책 크기는 세로 22.0㎝, 가로 16.7㎝이다. 권수제는 ‘오봉선생집(鰲峯先生集)’이고 판심제는 ‘오봉유고(鰲峯遺稿)’이다.

[구성/내용]

『오봉집』은 원집 3권, 속집 합 3책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일반적인 문집과 달리 편집 체제가 조금 뒤섞여 있다. 권수에 1684년 윤증이 지은 서(序)와 1804년 송환기가 지은 행장이 있다.

권1은 권수 제목이 ‘오봉선생집’으로 되어 있는 부분과 ‘오봉유고’로 되어 있는 부분이 있다. 오봉선생집에는 비명, 기와 증손 김우기(金又器)의 청으로 1653년에 윤순거(尹舜擧)가 지은 저자의 묘갈명이 있다. 오봉유고에는 오언 절구 20제, 칠언 절구 103제, 오언사운 37제, 칠언사운 94제가 실려 있고, 시의 편제는 유형별로 묶어 놓았다.

권2에는 「진보방요무소(進保邦要務疏)」와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방법과 외적을 방어하는 방도 등을 논한 「보방요무(保邦要務)」 42조 중 23조가 실려 있다. 「보방요무」는 저자의 역량이 집대성된 것으로 임진왜란 전후 시기의 연구 자료로서 주목된다. 권3에는 「보방요무」 19조와, 전주·금산 등지에 돌린 창의격문인 「정왜격(征倭檄)」과 의병장으로 추대될 때 지은 제문 등이 실려 있다. 원집 권미에는 1695년 이익태(李益泰)가 지은 발문이 있다.

속집은 1820년에 백규진(白奎鎭) 등이 김제민과 손자 김지수에게 증직과 시호를 내려 줄 것을 청하는 소본(疏本)과 1829년 김제민이 이조판서를 증직받은 기록을 모은 것이다.

[의의와 평가]

김제민정읍시 덕천면 도계리 출생으로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장으로 활약하여 호남 지방은 물론 전국적으로 명성이 알려진 인물이다. 또 전쟁이 끝난 후에는 고향에 돌아와 나라의 장래를 염려하며 「보방요무」 42조를 조정에 올리기 위하여 상경하였다가 1599년 2월 22일 서울에서 서거하였다. 정읍시에서는 정읍의 긍지와 자존심을 드러내고 정읍의 인문·역사적 가치와 위상을 높이기 위하여 김제민을 2022년 2월 ‘정읍 역사 인물’로 선정하였다. 『오봉집』에 실린 전주·금산 등지에 돌린 창의격문인 「정왜격」과 의병장으로 추대될 때 지은 「제독문(祭纛文)」 등의 글을 통하여 정읍 시민들의 자긍심을 고취할 수 있겠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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