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재집』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301299
한자 『一齋集』
이칭/별칭 일재,이항,남고서원,기대승,노수신,김인후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문헌/전적
지역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영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간행 시기/일시 1673년연표보기 - 『일재집』 초간본 간행
간행 시기/일시 1759년 - 『일재집』 중간본 간행
간행 시기/일시 1887년 - 『일재집』 일재속집본 간행
간행 시기/일시 1936년 - 『일재집』 석인본 간행
소장처 성균관대학교 존경각 - 서울특별시 종로구 성균관로 25-2[명륜3가 53-21]
소장처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 서울특별시 관악구 관악로 1[신림동 산56-1]
소장처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하오개로 323[운중동 490-8]
소장처 국립중앙도서관 - 서울특별시 서초구 반포대로 201[반포동 60-1]
성격 고도서|문집
저자 이항
간행자 이수(李邃)
권책 원집 1권, 속록 합 1책[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본]
행자 목판본 10행 20자[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본]
규격 세로 19.2㎝, 가로 5㎝[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본]
어미 상하이엽화문어미[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본]
권수제 일재선생집(一齋先生集)
판심제 일재선생집(一齋先生集)

[정의]

1673년 간행된 조선 전기에 정읍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이항의 문집.

[저자]

이항(李恒)[1499~1576]의 본관은 성주이며, 자는 항지(恒之), 호는 일재(一齋)이다. 아버지는 의영고주부(義盈庫主簿)인 이자영(李自英)이며, 어머니는 전주 최씨로 소경전참봉 최인우(崔仁遇)의 딸이다. 박영(朴英)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고봉 기대승과 함께 호남을 대표하는 5현 중 한 명으로,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북면 남고서원에 배향되었다. 일찍이 무과에 뜻을 두어 무예를 익혔으나 30세부터 학문을 시작하여 의령군수, 고령군수, 임천군수를 지냈고 의빈부경력, 선공감부정을 거쳐 사헌부장령, 장악원정을 지내다 병으로 사퇴하였다.

[편찬/간행 경위]

『일재집(一齋集)』은 총 4차례 간행되었다. 초판본은 1673년(현종 14) 목판본으로 만들어졌으며, 중간본은 1759년(영조 35) 목판본으로 간행되었다. 『일재속집(一齋續集)』은 1887년(고종 24) 목활자본으로, 『일재유집(一齋遺集)』은 석인본으로 1936년 간행되었다.

이항의 문집은 5세손 이성익(李星益)이 임진왜란 때 누실된 유고를 수습하였으나 미처 간행하기도 전에 사망하자, 종인(宗人) 이준구(李俊耈)가 박세채(朴世采)의 교정과 서문을 받아 1673년 1권 1책의 목판본으로 간행하였다. 그런데 윤증의 『명재유고(明齋遺稿)』 권 32에는 1680년에 쓴 「일재집발(一齋集跋)」이 실려 있으나 현존 『일재집』에는 빠져 있다. 1673년의 초간본은 2023년 현재 성균관대학교 존경각에 소장되어 있다.

그 후 이성익의 손자 이수(李邃)가 널리 여러 문집을 참고하고 유전되고 있는 글을 모아 「유사(遺事)」 약간 편으로 속록(續錄)을 만들었다. 여기에 「남고서원사액제문(南皐書院賜額祭文)」과 「일재선생유허비후지(一齋先生遺墟碑後誌)」를 보충하고 조정(趙晸)의 속록발(續錄跋)을 붙여 1759년(영조 35) 원집과 함께 1책의 목판본으로 간행하였다. 중간본은 2024년 현재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등에 소장되어 있다.

그 후 9세손 이동협(李東莢)이 여러 문헌을 참고하고 들은 것을 기록하여 1887년 1권 1책의 목활자로 전주에서 간행하였다. 속편본은 2023년 현재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등에 소장되어 있다. 또한 김환각(金煥珏)과 후손 이도복(李道復) 등이 남고서원에서 원집(原集)과 속록(續錄)을 합편하고 아울러 연보 및 연원록(淵源錄) 1권을 편집한 후, 1936년 4권 2책의 석인본(石印本)으로 간행하였다. 석인본은 2024년 현재 국립중앙도서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형태/서지]

『일재집』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본은 원집 1권, 속록 합 1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면은 10행 20자로 된 목판본으로, 책 크기는 세로 19.2㎝, 가로 15㎝이다. 권수제와 판심제는 ‘일재선생집(一齋先生集)’이다.

[구성/내용]

『일재집』은 원집과 속록으로 되어 있다. 박세채의 서(序), 시(詩), 서(書), 잡저(雜著), 부록(附錄), 송시열의 발(跋)로 구성된 원집과 유사(遺事), 사액제문(賜額祭文), 유허비후지(遺墟碑後誌), 조정(趙晸)의 발(跋)로 구성된 속록이 합쳐져 1책으로 되어 있다.

원집의 시 22제는 칠언과 오언이 섞여 있으며, 대부분 정읍시 태인면에 은거한 뒤의 작품으로서 증여시가 많다. 이 중 「기하서(寄河西)」 이하 3제는 습유(拾遺)이다. 서(書) 16편은 노수신, 김인후, 기대승 등과 ‘태극도설’, ‘인심도심설(人心道心說)’ 등에 관하여 주고받은 편지이다. 내용은 저자 자신이 깊이 궁리하여 체득한 것으로 정주(程朱)의 학설을 종주로 하고, 명나라 유자 나흠순(羅欽順)의 학설을 비판한 것이 많다. 「여노과회수신서(與盧寡悔守愼書)」 이하 7편은 습유이고 그 가운데 「답허참의서(答許參議書)」 이하 3편은 미완성 편지이다. 잡저에는 「이기설」, 「서증한수재(書贈韓秀才)」, 「시제생(示諸生)」 등 8편의 글이 있는데, 이항의 학문하는 방법 및 경향을 엿볼 수 있다.

부록에는 묘갈명, 유사를 비롯하여 제문 14편과 만사 24편이 실려 있다. 유사는 『퇴계집(退溪集)』 등에서 저자와 관련된 일화를 수록한 것이며, 제문과 만사는 허엽(許曄), 노수신(盧守愼) 등 교우 및 문인들이 지은 것이다. 권미에 송시열의 발(跋)이 있다.

속록의 유사는 『동각잡기(東閣雜記)』 등에서 관계 기록을 초록한 것으로서 원집의 유사와 같은 성격이다. 「남고서원사액제문」은 이항의 사당을 남고서원(南皐書院)으로 사액(賜額)할 때 내린 제문이다. 「일재선생유허비후지(一齋先生遺墟碑後誌)」는 자손들이 이항의 구지(舊址)인 태인현 분동리에 세운 비에 유숙기(兪肅基)가 쓴 글이다. 권미에는 조정(趙晸)이 쓴 속록발(續錄跋)이 실려 있다.

[의의와 평가]

일재 이항은 정읍시 및 주변 지역에서 학문적 파급력과 영향력이 크다. 이항이 제향된 남고서원은 서인의 주도하에 사액이 결정되었는데, 이는 이항의 정치적, 사회적 지위가 공인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며 호남의 도학자와 사표로서의 상징적 의미를 획득했음을 뜻한다. 따라서 『일재집』이항의 학문과 문예적 편린을 살필 수 있는 자료로서의 가치뿐만 아니라 역사적·지역적 가치를 동시에 지니고 있어 정읍시의 향토 문화유산으로서의 의미가 매우 크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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