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30017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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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滄東里 |
영어공식명칭 | Changdong-ri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이평면 창동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조성욱 |
[정의]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이평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창골[滄洞]이었던 이름이 창동(滄東)으로 변하여 창동리(滄東里)로 명칭이 붙여졌다.
[형성 및 변천]
본래 고부군 궁동면(宮洞面) 지역이었으며,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에 따라 송산리(松山里), 소송리(小松里), 광기리(光己里)[또는 廣基里], 주산리(舟山里) 및 신송리(新松里)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전라북도 정읍군 이평면 창동리로 개설되었다. 1995년 1월 1일 도농 통합 정책에 따라 정주시와 정읍군이 정읍시로 통합되면서 전라북도 정읍시 이평면 창동리로 개편되었다. 2024년 1월 18일 전북특별자치도 출범에 따라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이평면 창동리가 되었다.
[자연환경]
창동리의 서쪽은 구릉지를 이루고 있고, 동쪽은 덕천천 유역의 평야 지역이다.
[현황]
2023년 5월 현재 창동리의 면적은 3.48㎢이며, 인구는 176가구, 272명[남자 148명, 여자 124명]이다. 창동리는 이평면의 서부에 있으며, 동쪽으로 평령리, 서쪽으로 영원면 운학리, 남쪽으로 산매리, 북쪽으로 청량리, 장내리와 접하고 있다.
창동리는 창동(滄東)마을, 신송(新松)마을, 소송(小松)마을, 후송(後松)마을, 주산(舟山)마을의 5개 행정리로 이루어져 있다. 창동마을은 창골[滄洞]이라고도 하며 창동리의 중심 마을이다. 천태산 동쪽에 있다. 창동마을의 선비 김택술(金澤述)이 스승인 전우(田愚)의 가르침을 쫓아서 중국 주자(朱子)의 고사에 따라 마을 이름을 ‘창동’이라 하였다고 한다. 서쪽 천태산으로 넘어가는 당실미재, 북두덜미등에서 서쪽 영원면 운학리로 넘어가는 창골재 등이 있다.
창동마을에서 1934년 소송을 아래뜸, 후송을 뒷멀로 분리하였고, 1940년대에 샛터를 분리하여 신송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신송마을에는 전우의 제자 김택술을 향사하기 위하여 세운 창동서원(滄東書院)[전북특별자치도 문화유산자료]이 있다. 소송마을은 창골 아래쪽에 있다. 동쪽의 덕천천을 건너가는 창동교가 있다. 후송마을은 소송마을과 한 마을이었는데, 1950년대 소송마을과 거리가 멀어 마을 일이 불편하여 자연마을로 분리되었다고 하며, 소송마을의 후편에 있다고 ‘후송’이라고 불리었다고 한다. 주산마을은 창동리의 북쪽 구릉지에 있으며, 옛날 마을 앞에 바다가 있었고, 마을 형태가 배가 떠 있는 형상이라 하여 ‘주산’이라 하였다고 한다. 주산마을은 옛날 마을 앞에 다리가 두 개 놓여 있다 하여 양간다리[陽橋]라고도 하였다. 주산마을에는 1954년에 세워진 전봉준 장군의 단소[제단과 허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