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3005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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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井邑 黃土峴 戰蹟 |
이칭/별칭 | 황토재,황토현 전적지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터 |
지역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덕천면 동학로 742[하학리 56-1]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조광환 |
문화재 지정 일시 | 1976년 4월 3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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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해지 일시 | 1981년 12월 10일 - 황토현전적지 전라북도 기념물 제34호 지정 해지 |
문화재 지정 일시 | 1981년 12월 10일![]()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11년 7월 28일![]()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정읍 황토현 전적 사적으로 변경 지정 |
소재지 | 정읍 황토현 전적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덕천면 동학로 742[하학리 56-1] 일대![]() |
성격 | 전적지 |
지정 면적 | 164,658㎡ |
소유자 | 정읍시 |
관리자 | 정읍시 |
문화재 지정 번호 | 사적 |
[정의]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덕천면 하학리에 있는 동학농민군이 관군과 최초로 전투를 벌인 격전지.
[개설]
황토현은 동학농민군이 관군을 상대로 최초의 전투를 벌여 최대의 승리를 거둔 역사적인 장소이다. 높이 35.5m의 낮은 언덕으로 황토재라고도 한다. 1894년 3월 26일 전라도와 충청도 지역의 동학농민군들이 백산에 집결하였다는 소식을 들은 전라감사 김문현은 동학농민군들을 진압하기 위하여 전라감영군과 보부상군 2,300여 명을 출동시켰다. 1894년 4월 6일 아침, 동학농민군이 도교산(道橋山)[현 하학리 도학초등학교 뒷산]에 집결하자 백산으로 출동하였던 전라감영군은 뒤를 추격하였다. 이때 동학농민군이 황토현 맞은편에 있는 사시봉에 진을 치자 뒤를 쫓던 관군은 1894년 4월 6일 해질 무렵 황토현에 이르러 진을 치고 머물렀다. 전봉준은 이날 밤 관군이 어둠을 틈타 기습 공격하여 올 것을 예측하고 본진을 비우고 병력을 나누어 주위에 잠복시켰다. 예상하였던 대로 관군과 보부상 부대는 동학농민군 진지가 조용하자 잠든 줄 알고 습격하였다. 이때 관군 측에서는 전라중군 김달관과 초관 이재섭이 서로 공을 세우고자 함께 진격하지 않고 경쟁하듯이 앞을 다투어 나가 공격하였다. 관군들이 함정에 빠지자 매복하였던 동학농민군들이 사방에서 공격하였다. 관군들은 지리에 어두워 지척을 분간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당하였으며 살아남은 병사들은 본진으로 도망쳤으나 전날 백산에서 부안으로 이동하였던 동학농민군의 일부 부대가 매복하여 있다가 공격하여 전멸시키다시피 하였다. 이어 동학농민군들은 여세를 모아 관군의 황토현 본진을 급습하였다.
우영관(右領官) 이경호(李景鎬)는 병사를 이끌고 혼자서 진을 지켜 가슴에 총을 맞고 얼굴에 창을 찔려 사망하였으며 서기 이은승과 담양의 수성별장 국인묵도 함께 사망하였다. 태인의 전 감역인 유병직은 행부보상(行負褓商)의 반수(班首)였는데, 여러 상인들을 통솔하여 스스로 영관이 된 후 군대의 뒷전에 있다가 창과 칼에 찔려 사망하였다. 보부상(褓負商) 도반수(都班首)[조선 후기, 보부상 조합에서 조를 거느리던 우두머리]인 송병호 등 보부상들은 변변찮은 무기로 제대로 싸워 보지도 못하고 패하였다. 탄약 수송 임무를 담당한 신영대관 이재한과 유판근은 도망쳤고 교장 백찬경과 육용규 등도 도망하여 관군과 보부상 연합군은 크게 참패하였다. 한편 전라도 태인현 고현내면(古縣內面)에서는 유생 김기술을 중심으로 한 100여 명이 민보군을 조직하여 태인현감 홍면주를 만나 무기를 제공받아 황토현으로 출전하였으나 새벽녘에 동학농민군의 기습을 받아 제대로 싸워 보지도 못하고 도망치고 말았다. 정읍 황토현 전적은 1976년 4월 3일 전라북도 기념물 제34호로 지정되었으나 1981년 12월 10일 전라북도 기념물에서 지정 해지되었고, 사적 제295호로 지정되었다. 2011년 7월 28일 고시에 따라 ‘황토현전적지’에서 ‘정읍 황토현 전적’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고시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어 사적으로 변경되었다.
[변천]
정읍 황토현 전적에는 1963년 10월 3일 황토현에 동학농민군의 승전을 기념하는 최초의 조형물인 갑오동학혁명기념탑이 건립되었다. 1983년 12월 황토현 동남쪽 기슭에 황토현기념관이 건립되었고, 1987년 12월 전봉준 장군 동상이 건립되었다. 1992년 12월 사당(祠堂)인 구민사(救民詞)가 건립되었다. 2022년 6월 25일 전봉준 장군 동상이 철거되고 ‘불멸, 바람길’이라는 이름의 전봉준과 동학농민군 군상이 들어서 있다.
[위치]
정읍 황토현 전적은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덕천면 동학로 742[하학리 56-1] 일대에 해당한다. 높이 35.5m의 황토로 이루어진 언덕인 황토현은 정읍시 덕천면 하학리와 도계리 사이이다.
[현황]
정읍 황토현 전적의 총면적은 16만 8501㎡이며 입구에 ‘제세문(濟世門)’이라는 명칭의 외삼문(外三門)을 지나 좌측에 황토현전적지 정화기념비(黃土峴戰迹地 淨化記念碑)가 세워져 있다. ‘보국문(輔國門)’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는 내삼문(內三門)에 들어서면 좌측에 ‘제민당(濟民堂)’이라는 강당이 나오는데 내부에는 전봉준의 영정(影幀)이 걸려 있다. 우측에는 40평[약 132㎡] 규모의 기념관이 있는데 내부에는 ‘백산 3월 봉기‘, ‘전주집강소(全州執綱所)’, ‘삼례 9월 봉기‘, ‘우금티전투[우금치전투]’ 등 4점의 대형 그림이 전시되어 있다. 위쪽 정면에는 ‘불멸, 바람길’이라는 전봉준과 동학농민군 동상이 있으며 좌측에는 ‘구민사(救民詞)’라는 현판이 걸린 사당이 있다. 사당 뒤에는 황토현으로 올라가는 소나무 숲 사이로 난 오솔길이 있으며 뒤쪽에서 올라갈 수 있는 돌계단을 설치하여 오르기 쉽게 하였다. 정상에는 동학농민군의 최초 전투와 승전을 기념하기 위하여 1963년 10월 3일 건립한 갑오동학혁명기념탑이 서 있다. 정부에서 2019년 2월 동학농민혁명 국가기념일[5월 11일]을 제정하였는데, 1894년 4월 7일에 있었던 황토현 전승일을 양력으로 환산한 것이다.
[의의와 평가]
1894년 황토현 전투의 승리로 인하여 동학농민군의 사기가 크게 높아졌으며, 관망하고 있던 각 지역의 백성들이 자신감을 얻고 동학농민군으로 참여하여 동학농민혁명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정읍 황토현 전적을 통하여 황토현 전투가 지닌 역사적·상징적 의미를 살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