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300531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적/터
지역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고부면 고부주산길 4[신중리 562-1]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조광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폐지 시기/일시 1894년연표보기 - 사발통문 작성터 소실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17년 8월 14일 - 사발통문 작성터 교구실로 조성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19년 - 사발통문 작성터 교구실 폐쇄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41년 2월 17일 - 사발통문 작성터 살림집으로 개조
문화재 지정 일시 2016년 7월연표보기 - 사발통문 작성터 정읍시 향토문화유산 제6호 지정
소재지 사발통문 작성터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고부면 고부주산길 4[신중리 562-1]지도보기
성격 집터
소유자 김충남
관리자 김충남
문화재 지정 번호 정읍시 향토문화유산 제6호

[정의]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고부면 신중리에 있는 동학농민혁명 거사 계획인 사발통문을 작성한 곳.

[개설]

사발통문 작성터(沙鉢通文 作成터)는 1893년 11월 전봉준최경선 등 20명의 동학농민군 핵심 인물들이 모여 사발통문을 작성하였던 곳이다. 계사년(癸巳年) 11월 전봉준최경선 등 20명의 동학농민군 지도자들은 당시 전라도 고부군(古阜郡) 서부면(西部面) 죽산리(竹山里) 송두호의 집을 도소(都所)로 정하고 송두호의 집에 모여 봉기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봉기의 당위성을 밝히는 격문과 더불어 사발을 엎어 놓은 모양으로 서명한 사발통문을 작성하였다. 1894년 1월 10일 사발통문 거사 계획에 따라 고부농민봉기가 전개되었고 3월 13일 말목장터에 모인 동학농민군들이 해산하면서 소강 상태로 접어들자 관망하고 있던 안핵사 이용태가 이끈 관군이 고부군에 들어와 사발통문 작성터송두호의 집을 불태워 버렸다. 송두호의 집은 전봉준의 아버지 전창혁이 장두(狀頭)[소장을 올린 우두머리]로 나섰다가 곤장을 맞고 돌아와 치료를 하였던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변천]

1894년 관군에 의하여 불타 버린 집터에 1904년 고부포교당을 새로 지어서 천도교 487교리강습소가 들어섰다. 1917년 8월 14일 송대화를 비롯한 고부 지역 동학교인들이 고부농민봉기 당시 사발통문을 작성하였던 송두호의 집터를 매입하여 교구실을 마련하였다. 이때 사발통문 작성에 참여하였던 송대화·이성하·이문형·최흥렬·송국섭 등이 각각 성금을 기부하였다. 그러나 1918년 3월 27일 임재호에게 소유권이 이전되었고 1919년 3·1운동에 고부교구 책임자들이 참여하였다는 이유로 일제에 의하여 구속되고 교구실은 폐쇄되었다.

1929년 3월 27일 송국섭에게 다시 소유권 이전되어 살림집으로 쓰이다가 1932년 11월 28일 김종철에게 대지와 건물을 넘겨주었다. 이후 방치되어 폐가나 다름없던 건물을 1937년 5월 22일 임두영이 매입한 뒤 신축 공사를 시작하여 1941년 2월 17일 준공한 후 살림집으로 사용하다가 임두영이 사망한 후 현재 김충남이 살고 있다.

[위치]

사발통문 작성터는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고부면 고부주산길 4[신중리 562-1]에 있다.

[현황]

사발통문 작성터는 정면 5칸의 목조 건물로 지붕은 컬러강판으로 개조하였다. 정문 좌측에는 사발통문 작성지임을 알리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으며 담 벽면에는 동학농민혁명 관련 판화 작품[화가 박홍규]들이 그려져 있다.

[의의와 평가]

사발통문 작성터는 사발통문이 작성된 곳으로 동학농민혁명 거사 계획이 이루어진 역사적인 장소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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