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30059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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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石南歷事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덕천면 동학로 742[하학리 56-1]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조광환 |
저술 시기/일시 | 1951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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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18년 3월 9일![]()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석남역사 전라북도 문화재자료로 변경 지정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24년 1월 18일 - 석남역사 전북특별자치도 문화재자료로 변경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24년 5월 17일 - 석남역사 전북특별자치도 문화유산자료로 변경 |
소장처 |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덕천면 동학로 742[하학리 56-1]![]() |
성격 | 고문서 |
저자 | 박문규 |
권책 | 1권 1책 |
문화재 지정 번호 | 전북특별자치도 문화유산자료 |
[정의]
1951년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고부면에 거주하였던 박문규가 동학농민혁명을 경험한 내용을 회고하며 기록한 문집.
[개설]
석남역사(石南歷事)의 앞부분에는 고조선부터 조선 시대까지 역사의 줄거리를 간추려 정리한 조선개국역년사(朝鮮開國歷年史)와, 백두산 등 조선 각지를 돌아 본 유람기가 있고, 다음으로 박씨 조상들이 전라도 고부군 석교리에 터를 잡고 대대로 살아온 내용을 담은 박씨정기역사(朴氏定基歷史)가 있다. 특히 박씨정기역사에는 박문규가 직접 보고 들은 전봉준과 고부농민봉기, 황토현 전투에 관련된 내용이 실려 있다.
석남역사는 2018년 3월 9일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193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고시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어 전라북도 문화재자료로 변경되었다. 2024년 1월 18일 전북특별자치도 문화재자료로 변경되었다. 2024년 5월 17일 국가유산청의 「국가유산기본법」 시행에 따라 전북특별자치도 문화유산자료로 바뀌었다.
[저자]
박문규(朴文圭)는 1879년 전라도 고부군 궁동면 석지리에서 태어났다. 8세 때 전봉준에게 천자문을 배웠으며, 16세 때 동학농민혁명을 겪었다. 1954년 사망하였다.
[편찬/간행 경위]
석남역사는 전봉준의 제자 박문규가 직접 경험한 고부농민봉기와 황토현 전투 등을 담은 회고록이다. 박문규는 73세가 되던 1951년 자신의 일생을 돌아보는 회고록을 남겼는데, 표지 제목을 ‘석남역사’라고 달았다. 석남역사는 저자 박문규의 손자인 박남순이 소장하고 있다가 전북대학교 박명규에 의하여 『한국학보』 71집[1993년 여름호]에 소개되었으며, 현재는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에 기증하여 보관되고 있다.
[형태/서지]
석남역사는 국한문혼용체 필사본 1권 1책의 문집이다. 표지 바탕은 먹색이며 먹색 위에 하얀 한지 2장을 붙여 ‘석남역사 소설(小說)’과 ‘유전(遺傳)’이라는 제목을 한문으로 달았다.
[구성/내용]
석남역사에서 주목할 내용은 박문규와 전봉준의 만남, 박문규 자신이 직접 보고 겪은 고부농민봉기와 황토현 전투 상황 등 동학농민혁명에 관련된 사실이다. 다른 관련 기록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생생한 내용들이다. 먼저 전봉준과의 만남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박문규의 나이 8세 때 아버지 손에 이끌려 전라북도 정읍시 이평면 조소리[현 장내리]에 있는 서당에 가서 전봉준으로부터 천자문을 배웠다. 당시 전봉준의 아버지가 학도들을 감독하였다고 회고하고 있다. 이로써 전봉준이 이미 1886년 이전부터 전라북도 정읍시 이평면 조소리로 이주하여서 서당을 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석남역사는 동학농민혁명이 발발한 고부에서 당시 16세였던 박문규가 직접 보고 겪은 경험과 전하여 들은 내용을 토대로 기록하여 놓았다. 고부농민봉기가 말목장날인 1894년 1월 8일 일어났으며, 석양 무렵에 통문이 돌아 사람들이 장터로 모였다. 고부 관아를 습격한 후 민중이 해산하면 전봉준 등 우두머리가 죽는다 하여 오랫동안 모여서 함께 지켰다는 등 농민군 지도부와 민중들의 단합된 모습도 기록되어 있다. 또 전봉준 등 지도부를 암살하기 위하여 전라감사 김문현이 비밀리에 병사 16명을 파견하였으나 말목장터에 설치한 대장소(大將所)에 출입하는 사람은 모두 왼손 회목에 노끈을 매어 표지로 삼았기에 결국 발각되어 암살에 실패하였다는 내용도 담겨 있다. 황토현 전투가 벌어지자 박문규는 아버지와 함께 마을 앞 벌판 갈대밭으로 피신하였는데 새벽에 관군이 패하였다는 소식을 들었으며, 만약 관군이 이겼다면 고부는 도륙되었을 것이라는 등 전투 상황과 관군의 행태 등에 대한 얘기를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석남역사는 정부나 유림 측의 기록이 아니라 고부의 농촌 지식인이 직접 경험한 내용을 기록하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으며, 당시 고부농민봉기와 황토현 전투 등의 동향을 이해할 수 있게 하여 주는 유용한 자료이다. 그러나 50여 년이 지난 다음에 쓴 회고이기 때문에 날짜 등에 대하여서는 정확성이 떨어진다는 한계가 있다. 2023년 5월 24일, 동학농민혁명은 민중이 주체가 되어 자유, 평등, 인권의 보편적 가치를 지향하기 위한 역사적 사건으로 인정받았으며, 석남역사를 비롯한 동학농민혁명 관련 기록물 185점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