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300884
한자 碧連庵
영어공식명칭 Byeoglyeonam Temple
이칭/별칭 백련암(白蓮庵),고내장사(古內藏寺),벽련암(壁蓮菴),홍련암(紅蓮庵)
분야 종교/불교
유형 기관 단체/사찰
지역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내장산로 1220-74[내장동 576]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경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660년연표보기 - 백련사 창건
폐찰 시기/일시 1539년연표보기 - 백련사 폐찰
중수|중창 시기/일시 1925년 무렵 - 벽련사 극락보전과 요사채 중수
개칭 시기/일시 1925년연표보기 - 백련사에서 벽련사로 개칭
폐찰 시기/일시 1951년 1월연표보기 - 벽련사 6·25전쟁으로 소실
중수|중창 시기/일시 1986년연표보기 - 벽련암 복원
현 소재지 벽련암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내장산로 1220-74[내장동 576]지도보기
성격 사찰
창건자 환해
전화 063-538-3303

[정의]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내장동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소속의 암자.

[개설]

벽련암(碧連庵)은 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 본사 선운사의 말사인 내장사의 부속 암자이다. 내장산 서래봉 중봉 300m 고지에 자리하고 있다. 벽련암은 ‘고내장사(古內藏寺)’라고도 하며, 본래 내장사가 있던 곳에 있다고 한다. 근세에 이르러 영은사(靈隱寺)[현 내장사]를 내장사로 개칭하고, 벽련암은 백련암(白蓮庵)이라고 이름하였다가 벽련암(碧蓮庵)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 이칭으로는 고내장사를 비롯하여 벽련암(壁蓮菴), 홍련암(紅蓮庵) 등이 있다.

[건립 경위 및 변천]

벽련암은 660년(의자왕 20)에 환해선사(幻海禪師)가 창건하였고, 백련사(白蓮寺)라고 불렸다고 전한다. 조선 중종 때인 1539년 조정에서 폐찰령이 내려져 주변의 영은사, 즉 지금의 내장사와 함께 불태워졌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정읍 조에 “백련사 혹은 내장사라고 하는 절이 내장산에 있다”라는 구절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벽련암내장사라고 하였음을 알 수 있다.

1925년 계종(啓宗)내장사벽련암으로 옮겨와 한때 내장사를 겸하기도 하였다고 하며, 계종은 1925년 무렵 극락보전과 요사채를 중수하고 절 이름을 ‘벽련사’라고 하였다고 한다. 다른 기록에는 중 백학명(白鶴鳴)이 지금의 벽련암 자리에 극락보전과 요사채를 중수하면서 이름을 ‘벽련사’라 칭하였다고 전한다. 1938년 혜순이 내장사를 중창하면서 벽련사는 지금의 자리에 남게 되었다. 벽련사는 1951년 1월 6·25전쟁 중에 내장사와 함께 소실되었는데 암자인 벽련암은 1986년 복원되었다. 지금의 벽련암은 1986년 복원 당시 지은 것이다.

[활동 사항]

벽련암은 참선 기도 도량이다. 승려들의 수행 공간인 서래선원(西來禪院)이 있다. 연등(燃燈)과 인등(引燈) 불사를 한다. 주지는 진공이고, 신도는 100여 명 정도이다.

[현황(조직,시설 현황 포함)]

벽련암 경내에는 극락보전과 천불전, 삼성각, 요사채 정양원(淨養院) 등이 있다. 극락보전 왼편에는 진공당(眞空堂)과 서래선원(西來禪院)이 있다. 수행 공간인 서래선원은 종무소를 겸하고 있다. 요사채 정양원 앞에 연지가 있고 관음보살상이 있다. 경내 서편에 탑 형태의 부도가 남아 있다. 부도 뒤편 암벽에 ‘석란정(石蘭亭)’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는데 태인 출신 서예가 몽련당(夢蓮堂) 김진민(金鎭珉)의 글씨라고 한다. 그 외 천불전 앞에 오층 석탑이 조성되어 있다.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1786~1856]가 벽련암에서 수도하면서 백련암(白蓮菴)을 벽련암(壁蓮菴)으로 개칭할 것을 권하고 현판을 써 걸은 사실이 있는데 6·25전쟁 때 소실되었다.

[관련 문화재]

옛 절터 내장사지(內藏寺址)가 1985년 8월 16일 전라북도 기념물 제73호로 지정되었다. 내장사지정읍시 내장동 576 외 5필지이며 면적은 9.851㎡ 이다. 내장사지는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고시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어 전라북도 기념물로 변경되었다. 2024년 1월 18일 전북특별자치도 기념물로 변경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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