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30097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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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壽齊天 |
이칭/별칭 | 정읍,빗가락정읍,횡지정읍,중명지곡,관악 합주곡,정읍사 |
분야 | 문화·교육/문화·예술 |
유형 | 작품/음악·공연 작품 및 영상물 |
지역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신은주 |
[정의]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에서 전승되는 궁중 관악 합주곡.
[개설]
「수제천」은 궁중의 중요한 연례(宴禮)와 무용에 연주하던 관악 합주곡이다. 백제가요 「정읍사(井邑詞)」의 반주였으나, 독립적인 기악곡으로 연주되고 있다. 본래 악곡명은 「정읍(井邑)」이고, 「빗가락정읍」 또는 「횡지정읍(橫指井邑)」이라고도 불린다. 고려 시대 궁중 정재(宮中 呈才) 「무고(舞鼓)」의 반주 음악으로도 쓰였다. 현재는 「처용무(處容舞)」의 반주 음악으로도 사용된다.
[공연 상황]
「수제천」은 관악 합주곡 및 「처용무」의 반주 음악으로 연주된다.
[구성]
조선 전기 문헌인 『악학궤범(樂學軌範)』에는 「정읍만기(井邑慢機)」, 「정읍중기(井邑中機)」, 「정읍급기(井邑急機)」의 세 형태로 기록되어 있으나, 오늘날 「수제천」은 하나의 형태이다. 「수제천」은 총 4장으로 구성되는데, 제1장, 제2장, 제3장은 각각 7장단, 제4장은 2장단이다. 악기 편성은 향피리, 대금, 소금, 해금, 아쟁, 장구, 좌고이고, 매 장단의 끝부분에서 피리가 쉴 때 다른 악기가 가락을 이어 가는 연음 형식으로 되어 있다.
[내용]
『고려사』에는 정읍과 관련한 기록 중에 백제가요인 「정읍사」에 대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정읍은 전주의 속현이다. 현의 사람이 행상을 나가서 오래되어도 돌아오지 않자 행상의 아내가 산 위의 돌에 올라가 바라보면서 남편이 밤에 가다가 해를 입을까 두려워하여 흙탕물의 더러움을 빌려서 노래하였다. 세상에 전하여지는 말로는 고개에 올라가 남편을 바라본 돌이 있다고 한다[井邑 全州屬縣 縣人爲行商 久不至 其妻登山石以望之 恐其夫夜行犯害 托泥水之汚以歌之 世傳, 有登岾望夫石云].”
또한 고려 시대 궁중 정재 「무고」에서 「정읍사」를 노래하고 악곡을 연주하였음도 기록되어 있다.
“무고/ 춤추는 대열[검은 적삼이다]이 악관과 기녀들[악관은 붉은 옷이고 기녀는 붉은 분장을 한다]을 이끌고 남쪽에 선다. 악관들이 두 줄로 앉으면, 악관 두 명이 고와 대를 들어다 전 가운데에 놓는다. 모든 기녀는 「정읍사」를 노래하고 향악(鄕樂)으로 곡을 연주한다. 기녀 두 명이 먼저 나가서 좌우로 나누어 고의 남쪽에 서서 북쪽을 향하여 절을 한다. 마치고는 꿇어앉아서 두 손을 모으고 일어나 춤을 춘다. 음악이 한 번 끝나는 것을 기다려서 두 기녀가 북채를 잡고 일어나 춤을 추는데, 좌우로 나누어 북을 끼고 한 번 나아갔다 한 번 물러났다 한다. 끝이 나면 북의 주위를 돌며 마주 보기도 하고 등지기도 하며 빙빙 돌면서 춤을 추다가, 북채로 북을 두드리는데, 음악의 절차를 따라 장고와 서로 가락을 맞추다가 음악이 끝나면 멈춘다. 음악이 다 끝나면 두 기녀가 앞에서 하였던 것과 같이 엎드렸다가 일어나서 물러간다[舞鼓/ 舞隊(皂衫) 率樂官及妓(樂官朱衣 妓丹粧) 立于南 樂官重行而坐 樂官二人 奉鼓及臺 置於殿中 諸妓歌井邑詞 鄕樂奏其曲 妓二人先出分左右 立於鼓之南 向北拜 訖 跪 歛手起舞 俟樂一成 兩妓執鼔槌起舞 分左右俠鼓 一進一退 訖 繞鼓或面或背 周旋而舞 以槌擊鼓 從樂節次 與杖鼓相應 樂終而止 樂徹 兩妓如前 俛伏興退].”
조선 전기 문헌인 『악학궤범』에도 무고 정재의 반주 음악으로 「정읍」이 기록되어 있으나, 조선 후기에 이르면 무고의 반주 음악으로 사용되지 않고 노랫말이 더 이상 불리지 않으면서 기악곡으로만 연주되었다. 조선 후기에 이르러 원래의 악곡명인 「정읍」과 함께 「수제천」이라는 아명이 혼용되기 시작하였고, 1930년대 이왕직아악부(李王職雅樂部)의 이습회(肄習會) 공연을 통하여 점차 「수제천」이 곡명으로 정착되었다. 연주 관행에도 변화가 생겨 조선 시대에 관현 합주로 연주되었던 것과 달리 삼현육각(三絃六角)의 관악합주 형태로 변모되었다. 현재는 정재 「처용무」의 반주 음악으로도 쓰인다.
[의의와 평가]
「수제천」의 본래 이름인 「정읍」은 오늘날의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와 이름이 같아서 「수제천」과 정읍 지역의 관련성에 대하여 여러 주장이 있었다. 「수제천」과 정읍 지역의 관련에 대하여서는 백제 시대 정읍 지역의 노래였던 「정읍사」가 고려 시대 궁중 정재 「무고」의 창사(唱詞)로 불리며 악곡이 함께 연주되었고, 현재 기악곡 「정읍」으로 전승된 것이라고 본다. 또 오늘날 연주되는 「수제천」은 백제 시대 정읍 지역의 노래가 1,000여 년 이상의 오랜 시간 동안 변모하여 이른 것이라는 주장이다. 지역의 노래곡이 궁중 음악으로 수용되어 정재의 반주 음악 및 국가적인 의례 음악으로 연주된 것이고, 오늘날 한국 궁중 음악의 백미(白眉)로 일컬어지는 대표적인 악곡으로 자리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