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301289 |
---|---|
한자 | 東學農民革命 民謠 |
이칭/별칭 | 파랑새요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
시대 | 근대/근대,현대/현대 |
집필자 | 김성식 |
[정의]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에서 전승되고 있는 동학농민혁명 민요.
[개설]
동학농민혁명 민요는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에서 전승된 참요(讖謠) 성격의 민요들을 일컫는다. 정읍시에서 전승되는 동학농민혁명 민요에는 「새야 새야 파랑새야」, 「개남아」, 「우여 우여 웃녘 새야」, 「봉준아 봉준아」, 「가보세 가보세」 등이 있다.
[민요 생성 배경]
1894년 1월 전라도 고부군[현 정읍시 일대]의 농민들이 봉기하였다. 호남에서도 대표적인 곡창 지대로 꼽히는 고부군에 1892년 5월 조병갑(趙秉甲)[1844~1912]이 군수로 부임한 이래, 온갖 불법적인 방법으로 농민들을 수탈한 것이 봉기의 직접적인 계기였다. 당시 관리들의 부패와 수탈은 전국적인 현상이었으나, 조병갑은 그 정도가 훨씬 심하였다.
1894년 1월 10일, 봉기한 고부군 농민들은 바로 고부관아를 점령하였다. 무기고를 헐어 무장하고 억울하게 갇힌 사람들을 풀어 주었으며 창고를 열어 백성들에게 식량을 나누어 주었다. 또 탐학한 향리를 처벌하고 이어 조병갑을 찾았으나 이미 도주한 뒤였다. 관아에서 나온 농민들은 말목장터에 진을 치고 대장소(大將所)를 세우는 등 전열을 정비하였다.
그러나 동학농민혁명은 끝내 우금치를 넘지 못하고 일본군에 의하여 패퇴하였다. 농민군 지도자들은 대부분 체포되거나 처형되었다. 김개남(金開南)[1853~1894]은 12월 초순 태인에서 잡혀 전주에서 효수되고, 전봉준(全琫準)[1855~1895]은 순창에서, 손화중(孫華仲)[1861~1895]은 고창에서 잡혀 서울로 압송되었다. 전봉준은 ‘일본에 협조하면 살려 준다’는 수차례의 유혹을 당당히 뿌리치고, 1895년 3월 29일 손화중, 김덕명(金德明)[?~?] 등과 함께 교수대에 올랐다.
특히 전라도 땅에서 일본군들은 농민군 토벌이라는 명목으로 무차별 살육을 자행하였다. 본국으로부터 “전라도 서남단으로 밀어붙여 재기하지 못하도록 모두 살육하라”라는 지시를 받고 있었다. 민중들은 농민군의 패배, 지도자들의 처형에 분개하면서도 일본군의 탄압과 살육으로 두려움에 떨었다. 그즈음, 동토의 땅에서 갑오년 농민 봉기와 패배라는 슬픈 사연이 노래가 되어 퍼지고 있었다.
[내용]
1. 「새야 새야 파랑새야」
「새야 새야 파랑새야」는 정읍시 산외면 종산리에서 1975년 8월 박순호가 박경식[남, 60세]에게 채록하였다. 농기구와 죽창만으로 봉기한 동학농민군이 군사적 훈련과 압도적 무기로 무장한 일본군에 패퇴한 후의 비감(悲感)을 ‘엄동설한’에 비유하고 있다.
“새야 새야 파랑새야/ 네가 머드러 나왔느냐/ 댓잎도 푸러 솔잎도 푸러/ 하절인가 나왔더니/ 엄동설한이 분명하다/ 저 건네 들칭이 나뭇잎이/ 나를 속여 냈구나”
2. 「개남아」
「개남아」는 정읍시 산외면 동곡리 지금실에서 1985년 3월 김익두, 서홍관이 김개남의 친손자인 김환옥[남, 69세]에게 채록하였다. 가장 전투력이 강하였다는 김개남 부대조차 패퇴하고 결국 처형됨으로써 좌절된 영웅의 마지막 모습이 노래에 담겨 있다.
“개남아 개남아 김개남아/ 억만 군사 어따 두고/ 집둥주리가 웬말인가”
「우여 우여 웃녘 새야」는 정읍시 산외면 종산리에서 1975년 8월 박순호가 박순임[여, 31세]에게 채록하였다. ‘웃녘 새’를 청나라 군대로, ‘아랫녘 새’를 일본 군대로 비유하는데, 모두 이 땅에서 물러가라는 민중의 요구가 은유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우여 우여 웃녘 새야/ 웃녘 새는 우로 가고/ 아랫녘 새는 아래로 가고/ 닷마지기 논배미에/ 찰떡 치고 메떡 친란게/ 웃녘 새는 우로 가고/ 아랫녘 새는 아래로 가고”
4. 「봉준아 봉준아」
「봉준아 봉준아」는 임동권(任東權)의 『한국민요집』에 수록되어 있다. 결국 동학농민군이 우금치를 넘지 못하고 “놀미[논산], 갱갱이[강경]”에서 일본군에게 패배한 역사적 사실을 전하면서, 전봉준에 대한 민중의 처연한 심경을 노래에 싣고 있다.
“봉준아 봉준아 전봉준아/ 양에야 양철을 짊어지고/ 놀미 갱갱이서 패전했네”
5. 「가보세 가보세」
「가보세 가보세」는 임동권의 『한국민요집』에 수록되어 있다. 1894년이 육십갑자로 갑오년이라는 점을 들어 을미년인 1895년과 병신년인 1896년을 잇대어 절묘한 언어유희로 풍자하고 있다.
“가보세 가보세/ 을미적 을미적/ 병신되면 못 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