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3004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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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瀛原驛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 |
지역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영원면 은선리 |
시대 | 고려/고려,조선/조선 |
집필자 | 장순순 |
개정 시기/일시 | 1462년 - 영원역 앵곡도 소속에서 삼례도 소속으로 편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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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할 지역 | 영원역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영원면 은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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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시대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영원면 은선리에 있던 역.
[개설]
역(驛)은 487년(신라 소지왕 9) 처음 설치되기 시작하였고, 고려 시대에는 개경을 중심으로 전국에 22개의 역도(驛道)와 525개의 역이 설치되었다. 역도(驛道)는 대·중·소 3로(三路)로 구분하여 위치와 역로(驛路)에 따라 6등급으로 구분하였다. 『고려사(高麗史)』에 의하면, 전주(全州)와 공주(公州)에 이르는 길에 삼례역(參禮驛) 등 21개 역이 있었는데, 현재의 정읍 지역에는 영원역(瀛原譯)과 천원역(川原驛) 등 두 개의 역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된다. 조선 시대에는 영원역, 천원역, 거산역(巨山譯) 등 3개의 역이 설치되었다. 영원역은 지금의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영원면 은선리 역촌(驛村)에 있었다.
[제정 경위 및 목적]
전통 시대 중앙 정부와 지방 간의 효율적인 연결망을 구축하기 위하여 육로에 설치한 대표적인 교통·통신 및 숙박 시설로는 역과 원(院)을 들 수 있다. 역은 국가의 명령과 공문서의 전달, 관리나 외국 사신의 왕래 때 필요한 물품과 마필(馬匹) 공급, 관물(官物)의 수송 등이 목적인 반면 원은 관리에게 숙식을 제공하던 숙박 시설로서 기능을 한 기관이라는 데 차이가 있다. 역과 원을 합하여 역원(驛院)으로 통칭하였는데 역관(驛館), 역참(驛站), 우역(郵驛)이라고도 하였다.
[관련 기록]
영원역은 1539년(중종 25) 편찬된 조선 전기 대표적인 관찬 지리서인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역원」 항목에는 고부군[현 정읍시 고부면 일대]의 북쪽 10리[약 3.93㎞]에 위치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영원역은 정읍 지역에 있던 천원역이나 거산역이 1896년(고종 33) 1월 대한제국 칙령 제9호 「각 역 찰방 및 역속 폐지에 관한 건」에 따라 폐지된 것과 달리 그 이전에 폐지된 것으로 보인다.
영원역의 폐지 시기가 언제인지는 명확하지 않으나, 1871년(고종 8) 편찬된 『호남읍지(湖南邑誌)』와 1895년(고종 32) 편찬된 『호남읍지』에는 “고부군의 북쪽 18리[약 7.07㎞]에 있다. 삼례에 속한다. 송덕원(宋德院), 공유원(恭惟院), 가전원(加田院), 율원(栗院)은 고부군의 성 밑에 있다. 이상은 모두 군 동쪽 20리[약 7.85㎞]에 있는데 지금은 폐하였다“라고 되어 있어 고부군 소속의 역과 원은 늦어도 1871년 이전에 폐지된 것으로 추정된다.
[내용 및 변천]
『고려사』 참역(站驛) 조에 따르면, 영원역은 고려 시대부터 정읍 지역에 설치되어 있었다. 설치 시기는 명확하지 않으나, 고려 성종 대에 전국의 525개 역을 22개 역도(驛道)로 편성하는 과정에서 전공주도(全公州道) 소속 21개 속역 중 하나로 설치된 것으로 보인다. 고려 시대에는 전공주도 소속이었던 영원역은 조선 시대에 들어와서는 처음에는 앵곡도(鶯谷道) 소속이 되었다가 1462년(세조 8) 전국적인 역도제(驛道制) 개편 때 삼례도(參禮道) 소속의 역으로 편제되었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는 영원역이 앵곡도 소속의 역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성종 대에 반포된 『경국대전(經國大典)』과 1865년(고종 2) 왕명에 따라 영의정 조두순, 좌의정 김병학 등이 편찬한 조선 시대 마지막 법전인 『대전회통(大典會通)』에는 삼례도 소속으로 기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