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증산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300692
한자 姜甑山
영어공식명칭 Kang Jeungsan
이칭/별칭 사옥(士玉),강일순(姜一淳)
분야 종교/신종교
유형 인물/종교인
지역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덕천면 신월리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안후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71년 9월 19일연표보기 - 강증산 출생
몰년 시기/일시 1909년 6월 24일연표보기 - 강증산 사망
출생지 신월리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덕천면 신월리 지도보기
활동지 정읍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활동지 김제 -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금산면
성격 종교인
성별 남성

[정의]

근대 정읍 출신의 종교인.

[가계]

강증산(姜甑山)[1871~1909]의 본관은 진주(晉州)이며, 자는 사옥(士玉)이다. 본명은 강일순(姜一淳)이고, 호가 증산이다. 아버지는 강흥주(姜興周)이고, 어머니는 안동 권씨(安東 權氏)이다.

[활동 사항]

강증산은 1871년(고종 8) 9월 19일[음력]에 지금의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덕천면 신월리에서 태어났다. 일찍이 서당에서 글을 배웠으나 가난 때문에 학업을 중단하고 열다섯 살 무렵부터 남의 집 머슴을 살거나 나무꾼 일을 하였다. 1892년 정씨(鄭氏)와 혼인한 뒤에는 김제 초처[현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봉남면]의 처가에서 서당 훈장을 지내며 유불선(儒佛仙)을 비롯하여 제가서(諸家書)와 음양(陰陽)·의복(醫卜)·술수(術數) 등을 집중적으로 탐구하였다고 한다.

1894년 동학농민전쟁 당시 강증산은 농민들에게 전쟁에 끼어들지 못하도록 충고하였다. 당시의 혼란과 참상을 겪은 강증산은 기성 종교나 사람의 능력으로는 전쟁과 같은 혼란을 막을 수 없으며, 오로지 하늘과 땅의 질서를 근본적으로 뜯어고치는[後天開闢]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였다. 1897년에 집을 나온 강증산은 3년 동안 유랑하면서 비서(秘書)와 비문(秘文)을 접하였고 수많은 술객(術客)과 도인을 만났다. 김일부(金一夫)의 정역과 김경흔(金京訢)의 태을주도 이때 접하였고, 신술(神術)로써 사람의 병을 고치고 앞일을 예언하는 힘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생사와 길흉, 연사(年事)와 시사(時事) 등에 대한 예언이 적중함에 따라 일부 사람들은 강증산을 신인(神人)이라 불렀다.

강증산은 1901년 천지의 큰 도[大道]를 깨닫기 위하여 모악산 대원사(大院寺)에 들어가 수도한 지 9일째 되던 1901년 7월에 깨달음을 얻어 하늘과 땅의 대도(大道)를 보았으며 탐음진치(貪淫嗔痴)를 물리치게 되었다고 한다. 강증산이 깨달았다는 대도는 주송 수련 끝에 나타나는 신화통령(神化通靈)이다. 신화통령을 통하여서 신명계와 인간계의 모든 일을 알 수 있게 되었으며, 천지운도(天地運度)의 윤회에 따라 세상사를 예측하고 후천선계(後天仙界)를 열 권능까지 갖게 되었다고 한다.

모악산 대원사에서 내려온 강증산은 1902년 4월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청도리 하운동에 사는 김형렬(金亨烈)을 제자로 받아들였고, 김형렬의 집에서 따르는 이들과 함께 상제(上帝)의 권능으로써 하늘과 땅의 모든 일을 새롭게 계획하는 천지공사(天地公事)를 행하였다. 강증산은 천지공사에 참여한 이들에게 모든 일에는 조심해야 하며, 남에게 척 짓지 말고 죄를 멀리하며 순결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천지공사에 참여한 이들은 강증산의 제자가 되었으며, 강증산은 이들에게 태을주(太乙呪)·시천주(侍天主) 주문과 『대학』의 서전, 『주역』의 서문, 「도리원서문(桃李園序文)」, 「춘야연도이원서(春夜宴桃李園序)」 등을 외게 하여 강신과 개안을 체험하도록 하였다. 더불어 의복·술수와 약물 치료, 주송 수련 등을 통하여서 병자를 치료하였다.

강증산은 1907년 5월 지금의 정읍시 입암면 대흥리 차경석(車京石)의 집에서 신세계 조화 정부를 계획하는 천지공사에 차경석의 이종 누나인 미망인 고판례(高判禮)를 참여시켰다. 강증산은 고판례를 수부(首婦)[으뜸가는 부인]라 하고 고판례의 처소를 수부소(首婦所)라고 하였다. 강증산의 천지공사는 신분 차별과 남녀 차별 등의 모순으로 가득찬 말세를 끝내며, 반상(班常)이 따로 없고 남녀 동권의 시대를 계획하고 여는 행위였다. 따라서 천지공사에 고판례를 참여시킨 것은 남녀 동권의 시대를 알리는 상징성이 내포되어 있다.

한편, 강증산은 김제시 금산면 동곡리 김준상(金俊相)의 집에다 약장을 설비한 뒤에 광제국(廣濟局)이라 하고 의통(醫統)을 행하였다. 의통에는 사람의 병과 사회의 병을 고친다는 상징성이 내포되어 있다. 강증산은 또한 차경석의 집을 포정소(布政所)라 하고 정읍 백암리 김경학(金京學)의 집을 대학교(大學校), 태인 신경원(辛京元)의 집을 복록소(福錄所), 고부 신경수(辛京洙)의 집을 수명소(壽命所)라 각각 정하였다. 그리고 자신을 따르는 24인을 24절후에 따라 이름을 부여하니 이들이 곧 증산도문이다.

1907년 12월 관(官)은 증산도문을 불온한 집단이라며 잡아들였고, 강증산도 40여 일간 수감되었다. 신인으로 알려진 강증산이 수감되자 세인들은 물론 도문의 사람들까지 강증산을 의심하였다. 강증산은 도문을 이탈하는 사람이 속출하던 1909년 6월 24일에 사망하였고, 김형렬과 차경석 등 몇몇 제자들만이 강증산의 장례를 엄수하였다.

[사상과 저술]

1920년대 보천교(普天敎)의 수위 간부였던 이상호(李祥昊)와 이정립(李正立)은 보천교를 나와 1926년에 강증산의 일대기와 사상을 정리한 『증산천지공사기(甑山天師公事記)』를 간행하였고, 1929년에는 『증산천지공사기』를 보완하여 『대순전경(大巡典經)』을 간행하였다. 이후 『대순전경』은 강증산 계통 교단의 핵심 경전이 되었다.

강증산 사상의 핵심은 수련을 통한 도통, 즉 신화(神化)다. 인간을 신적 존재로 끌어올리는 신화의 궁극의 목적은 혼돈된 세상의 개벽이다. 이처럼 세상을 개벽하는 작업을 천지공사라고 한다. 개벽된 세상은 해원상생(解寃相生)의 세계이자 보은(報恩)과 인의(仁義), 정윤(正倫)과 명덕(明德) 등 인존을 기본으로 하는 평화로운 이상세계, 즉 후천선경(後天仙境)이다.

[묘소]

강증산의 묘소는 딸 강순임(姜舜任)이 김제시 금산면 모악로 260[금산리 434-2]에 세운 증산법종교본부 내에 있다.

[상훈과 추모]

증산법종교를 비롯하여 강증산 계통의 교단에서는 매년 강증산 출생일인 음력 9월 19일[탄강일]과 사망일인 음력 6월 24일[화천일]에 기념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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