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300890
한자 井邑 武城書院
이칭/별칭 태산서원
분야 종교/유교
유형 유적/건물
지역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칠보면 원촌1길 44-12[무성리 500]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동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615년연표보기 - 태산서원 건립
관련 사항 시기/일시 1696년연표보기 - 정읍 무성서원 사액
개축|증축 시기/일시 1828년 - 정읍 무성서원 강당 중건
개축|증축 시기/일시 1830년 - 정읍 무성서원 태산사 중건
개축|증축 시기/일시 1887년 - 정읍 무성서원 강수재 건립
개축|증축 시기/일시 1891년 - 정읍 무성서원 현가루 건립
문화재 지정 일시 1968년 12월 19일 - 무성서원 사적 제166호 지정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11년 7월 28일연표보기 - 무성서원에서 정읍 무성서원으로 개칭
문화재 지정 일시 2019년 7월 6일연표보기 - 정읍 무성서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21년 11월 19일 - 정읍 무성서원 사적으로 변경 지정
현 소재지 정읍 무성서원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칠보면 원촌1길 44-12[무성리 500]지도보기
성격 서원
양식 전학후묘
정면 칸수 3칸[현가루]|5칸[강당]|3칸[태산사]|4칸[강수재]
측면 칸수 2칸[현가루]|3칸[강당]|3칸[태산사]|2칸[강수재]
소유자 무성서원
관리자 정읍시
문화재 지정 번호 사적

[정의]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칠보면 무성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서원.

[개설]

정읍 무성서원(井邑 武城書院)최치원(崔致遠)[857~?]을 주벽으로 하여 신잠(申潛)[1491~1554]·정극인(丁克仁)[1401~1481]·송세림(宋世琳)[1479~1519]·정언충(鄭彦忠)[1491~1557]·김약묵(金若默)[1500~1558]·김관(金灌)[1575~1635]을 배항한 사액 서원이다. 대원군의 서원철폐령 때 전북특별자치도 지역에서 유일하게 훼철되지 않았다. 을사조약이 체결되고 1906년 최익현임병찬정읍 무성서원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정읍 무성서원은 1968년 12월 19일 ‘무성서원’이라는 명칭으로 사적 제166호로 지정되었고 2011년 7월 28일 ‘정읍 무성서원’이라는 명칭으로 변경되었다.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고시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어 사적으로 변경되었다.

[창건]

정읍 무성서원 건립은 통일 신라 시대 태산태수 최치원을 모신 생사당(生祠堂)에서 비롯되었다. 최치원이 태수로 부임하여 유풍을 진작시키고 떠나자 태산 사람들이 월연대(月延臺)[현 무성리 성황산 서쪽]에 생사당을 짓고 모셨다. 생사당은 살아 있는 사람을 모시는 사우이다. 1483년(성종 14) 생사당을 정극인이 향학당(鄕學堂)을 열었다는 현재의 정읍 무성서원 자리에 옮기고 태산사(泰山祠)라고 하였다. 1615년(광해군 7) 태산사와 향학당을 결합하여 서원으로 발전시키고 태산서원이라고 하였다. 1696년(숙종 22) ‘무성’이라는 사액을 받아 국가 공인 서원이 되었다.

[배향 인물]

정읍 무성서원은 1615년 서원 창건 시 최치원신잠을 모셨고, 1630년(인조 8) 정극인·송세림·정언충·김약묵을 추배하였으며, 1675년(숙종 1) 김관을 추배하였다. 문창후(文昌侯) 고운(孤雲) 최치원은 885년 태산태수로 부임하였다. 영천자(靈川子) 신잠은 신숙주의 증손으로 현량과 출신이며, 1543년(중종 38) 태인현감으로 부임하여 6년간 재임하였다. 불우헌(不憂軒) 정극인은 사간원정언을 지냈으며, 처가인 태인으로 낙향하여 고현동향약을 창시하고 「상춘곡(賞春曲)」을 지었다. 송세림·정언충·김약묵·김관 등은 태인 출신이다. 송세림은 본관이 여산이며 홍문관교리를 지냈다. 정언충은 본관이 경주로 진사이다. 김약묵은 본관이 도강이며 양주목사를 지냈다. 김관은 본관이 도강이며 진사이다.

[위치]

정읍 무성서원은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칠보면 원촌1길 44-12[무성리 500]에 있다. 앞으로 칠보천이 흐르고 뒤에는 성황산이 있다.

[변천]

정읍 무성서원의 강수재(講修齋)는 1887년(고종 24) 건립되었고, 현가루(絃歌樓)는 1891년(고종 28) 건립되었다. 강당은 화재로 소실되어 1828(순조 28)년 중건되었으며, 사당은 1830년(순조 30) 중수되었다. 흥학재(興學齋)는 1919년 건립되었으나 현재는 창건비만 서 있다.

[형태]

정읍 무성서원은 홍살문을 지나 현가루, 강당, 태산사가 일렬로 배치되어 있다. 강당 좌측에 강수재가 있으며, 강수재 뒤편에 ‘흥학재 창건비’가 있다. 현가루 앞에는, 서원철폐령 때 삭감된 복호(復戶)와 보노(保奴)를 회복시켜 준 영의정 이최응[대원군의 형] 공덕비를 비롯하여 비들이 줄지어 서 있다. 강수재 앞쪽에는 병오창의 기적비와 진사 최영대[동학농민군 최경선의 형] 불망비와 비각이 있다. 강당 서편에는 강당 중건에 공헌한 태인현감 서홍순 불망비와 전비서감승(前秘書監丞) 신용희 불망비가 있다. 비각 앞쪽, 홍살문 동쪽으로는 고직사가 있다. 현가루는 2층 누각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이다. ‘현가루’ 편액은 『논어』에 공자의 제자 자유(子游)가 예악(禮樂)으로 무성(武城) 고을을 잘 다스린 데에서 연유하였다. 강당은 석축 기단에 정면 5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이며, 3칸 대청에 좌우에 단칸 협실로 되어 있다. 대청 앞뒤가 탁 트여 있으며, 한가운데에 ‘무성서원’ 편액이 걸려 있다. 태산사는 정면 3칸, 측면 3칸에 맞배지붕이다. 강수재는 정면 4칸, 측면 2칸의 우진각지붕이다.

[현황]

정읍 무성서원은 2019년 7월 6일 ‘한국의 서원’이라는 명칭으로 다른 8개 서원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60여 종의 서원 관련 문헌이 소장되어 있다. 향사일은 2월 중정일이다.

[의의와 평가]

정읍 무성서원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9개의 서원 중에서 마을에 있는 독특한 서원이다. 전북특별자치도 지역을 대표하는 서원이며, 많은 문헌이 남아 있어 전라도 유림과 서원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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