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30088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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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書院 |
분야 | 종교/유교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
집필자 | 이동희 |
[정의]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지역에 있는 조선 시대 사설 교육 기관.
[개설]
서원(書院)은 선현 봉사와 교육 기능을 수행하는 사학이다. 서원이 건립되기 전에는 선현을 봉사하는 ‘사(祠)’가 있었고, 학생들을 교육하는 ‘재(齋)’가 있었다. 서원은 사우(祠宇)와 서재가 합쳐진 것이다. 그러나 점차 서원·사우가 남설되고 사우에서도 교육이 이루어지면서 구분이 애매하게 되어 사우도 서원으로 통칭하게 되었다.
전북특별자치도 정읍 지역의 서원은 총 11개소이다. 조선 시대에 창건된 서원은 5개로 정읍 무성서원(井邑 武城書院), 남고서원(南皐書院), 고암서원(考巖書院), 도계서원(道溪書院), 용계서원(龍溪書院)이다. 이 중에 정읍 무성서원, 남고서원, 고암서원 3개 서원은 사액 서원이다. 광복 이후에 건립된 서원은 옥산서원(玉山書院), 노양서원(魯陽書院), 동죽서원(東竹書院), 창동서원(滄東書院), 두암서원(斗岩書院)[경현사(景賢祠)], 구양서원(臼陽書院)[태산사(台山祠)] 등 6개소이다. 정읍 지역의 사우는 조선 시대 건립된 정충사(旌忠祠), 유애사(遺愛祠)[충렬사(忠烈祠)], 남천사(藍川祠), 모충사(慕忠祠), 송산사(松山祠), 서산사(書山祠) 등 6개소와 일제 강점기 이후 건립된 도봉사(道峯祠), 정읍 필양사(井邑 泌陽祠), 충렬사(忠烈祠) 등 3개소가 있다. 사액을 받은 사우는 정충사 1곳이다.
[태인현]
18~19세기 『태인읍지』 서원 조에 등재된 서원은 정읍 무성서원과 남고서원으로 사액 서원이다. 정읍 무성서원은 대원군의 서원철폐령 때 전북특별자치도 지역에서 유일하게 훼철되지 않은 서원이다. 통일 신라 때 태산태수 최치원을 주벽으로 태인현감 신잠, 정언 정극인, 홍문관교리 송세림, 후릉참봉 정언충, 양주목사 김약묵, 진사 김관을 배향한 서원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남고서원은 16세기 호남 사림의 한 학맥을 형성한 일재 이항과 제자인 의병장 김천일을 배향한 서원이다. 용계서원은 진사 최서림과 문인 김정호·은정화·한백유·유종흥, 그리고 김습을 배향하였다. 최서림은 당대 호남에서 명망이 높았던 학자로 제자가 178명이나 되었다. 조선 후기 건립된 사우로 임진왜란 때 『조선왕조실록』을 수호한 안의·손홍록과 김만정·김두현을 모신 남천사, 백광언을 비롯하여 9인을 배향한 모충사, 김대립을 비롯하여 6현을 배향한 송산사(松山祠) 등 3개소가 있다. 1920년대 건립된 사우로 조선 개국원종공신 김회련을 모신 도봉사와 일제의 은사금을 거절하고 자정순국한 김영상을 모신 필양사가 있다.
[고부군]
18~19세기 『고부읍지』 서원 조에 수록된 서원·사우는 정충사와 도계서원이다. 정충사는 임진왜란 때 동래부사로 순절한 송상현을 비롯하여 신호, 김준 등 고부 출신의 삼충신을 배향하였다. 정읍 지역의 서원 사우 중에서 가장 먼저 사액을 받았다. 도계서원은 이희맹, 김제민, 최안, 김지수를 향사하다가 김제안, 김흔, 김섬, 김습을 추배하였다. 『고부읍지』에는 빠져 있지만, 19세기 전반에 창건된 단학의 대가 권극중과 종성판관 최희정을 모신 서산사(書山祠)도 고부에 있었다. 광복 이후에 건립된 옥산서원, 노양서원, 동죽서원, 창동서원, 두암서원, 구양서원 등 6개 서원은 모두 옛 고부군 지역에 세워진 것이다. 옥산서원은 광산 김씨 김남식과 아들 김이성·손자 김성은을 배향하였고, 두암서원은 김해 김씨 김일손과 후손 김태하·김치옥·김양수를 배향하였다. 노양서원은 노론의 영수 송시열과 수제자 권상하를 배향하였고, 동죽서원은 기묘명현 조광조와 문인으로 전하는 전주 최씨 최희정을 배향하였다. 구양서원은 조선 후기 정통 성리학을 대표하는 간재 전우와 제자 권순명을 배향하였고, 창동서원은 전우의 제자 부안 김씨 김창술을 배향하였다.
[정읍현]
18~19세기 『정읍읍지』 서원 조에 수록된 서원은 고암서원과 유애사[충렬사]이다. 고암서원은 송시열과 수제자 권상하를 향사한 사액 서원이다. 송시열이 정읍에서 사사(賜死)되자 송시열을 기리기 위하여 창건하였다. 유애사는 이순신을 주벽으로 유춘필·유희진을 모시고 있다. 광복 이후 또 하나의 충렬사를 건립하여 이순신을 향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