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301128
한자 住生活
영어공식명칭 Housing Life
분야 생활·민속/생활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지역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남해경

[정의]

전북특별자치도 정읍 지역의 자연환경과 인문 환경을 반영하여 형성된 주거 생활 문화.

[개설]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는 지리적으로 한반도에서 남서부에 자리하고 있다. 정읍의 남동부 지역은 노령산맥이 산지를 이루고 있고 그 밖의 대부분 지역은 구릉 지대와 평야 지대로 되어 있다. 즉, 상두산·국사봉·묵방산·고당산·칠보산·내장산·입암산·방장산 등 노령산맥의 높은 산줄기가 정읍시의 경계를 이루면서 중앙에 분지를 형성하고 있다. 그리하여 산지와 구릉지를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이 해발 50m 미만의 넓은 평야로 형성되어 있다. 정읍을 흐르는 동진강산외면의 흑방산에서 발원하여, 옹동면상두산에서 발원한 용호천, 내장산에서 발원한 정읍천신태인읍에서 합류한 뒤, 김제시와 부안군의 경계를 이루면서 서해로 흘러간다. 그리고 고부천은 고창군에서 발원하여 시의 서쪽 경계를 이루면서 북진해 서해로 흐른다. 이로 인하여 넓은 충적 평야를 형성하여 농토가 넓고 비옥하며 관개 수리 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다. 기후는 남부서안형 기후구에 속하여 대체로 온난한 편이다. 연평균 기온 13℃, 1월 평균 기온 -1.5℃, 8월 평균 기온 26℃ 내외이며, 연강수량은 1,200㎜ 정도이다. 적설량은 전북특별자치도의 다른 평야 지역에 비하여 비교적 많은 편이다.

정읍시에 사람이 언제부터 살기 시작하였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다만 금붕동, 내장동, 용계동, 은선리를 비롯하여 거의 전 지역에서 선사 유적인 고인돌이 발견되는 것을 보면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선사 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마한, 백제로 이어지는 고대 국가와 고려, 조선을 거치면서 현대까지 주거하고 있다.

[정읍 지역 특징]

정읍의 주생활은 정읍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뒤부터 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선사 시대에는 수혈 주거에서 주생활이 이루어졌을 것이며 이후 움집[hut] 형태의 주거를 이루었을 것이다. 한반도의 다른 지역과 유사하게 정읍은 사계절로 인하여 여름에 덥고 겨울에 추운 가운데 삼한사온이 있는 기후가 펼쳐지고 있다. 지형적으로는 정읍을 둘러싸고 있는 산과 중심부 구릉 지대인 평야로 되어 있는 자연환경을 가지고 있다. 아울러 우리나라의 주거 문화를 형성하는 요인인 풍수지리, 불교문화, 유교 문화 등의 인문적인 내용이 정읍의 건축 문화를 형성하는 근본이 되었고 이에 따라 정읍의 주거는 정읍의 환경에 적합한 형태로 발전되었을 것이다. 시대가 흐르면서 이러한 유형은 정착되어 일반적인 주생활 형태와 유형이 형성되었다.

한반도의 주거 유형, 특히 살림집은 일반적으로 남부 지방에서 나타나는 -자형 평면, 중부 지방의 ㄱ자형, ㄷ자형 평면, 북부 지방의 田자형 평면으로 유형화된다. 남부 지방의 -자형은 홑집으로 부엌과 방, 마루가 -자형으로 구성되고 대청이 설치되는 평면을 말한다. 중부 지방의 ㄱ자형이나 ㄷ자형 평면에서는 부엌과 방, 대청이 ㄱ자 형으로 구성된다. 북쪽 지방의 田자형 평면은 겹집의 형태로 추위에 견딜 수 있도록 주생활을 형성하고 있다.

정읍은 지리적으로 한반도의 남서부 지역에 속하면서 건축은 일반적인 남부 지방의 유형에 속한다. 즉, -자형 평면으로 공간은 부엌과 방, 마루가 -자형으로 구성되고 내부에 대청이 설치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정읍과 인접한 동부 지방의 고지대인 임실, 순창은 반겹집의 형태가 나타나기도 하고 도장이 발달하는 평면 유형을 보여 주고 있어 지역의 환경적 특성을 반영하고 있다. 단지 이런 유적에 관한 표본이 많은 편은 아니어서 조금 더 조사가 필요하다.

정읍 지방 주생활의 또 다른 특징은 상류 가옥에서 볼 수 있다. 산외면 정읍 김명관 고택[국가민속유산]은 지역의 부잣집답게 집을 경제적인 형편 등에 의하여 순차적으로 지은 것이 아니라 안사랑채에 거주하면서 일시에 전체 집을 지었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공간 구성에 있어서는 대문에서 안채로 직접 들어가는 직선적인 공간 구조가 아니고 대문에서 사랑채, 안채를 담장이나 협문 등을 통하여 꺾어 들어가도록 되어 있으며 사람이 집에 들어갈 때 내부 공간이 바로 보이지 않도록 은유적인 공간을 구성하였다. 집을 구성하는 주요 건축 자재인 목재는 기둥과 도리, 보 등에서 나무를 가공하지 않고 자연스러운 모양의 곡재를 그대로 사용하였다는 점에서 최고 수준의 건축적 기술을 보여 주고 있다.

정읍 김명관 고택은 조선 철종 때 당시 지역의 부호 김명관이 창하산을 배산으로 하고 동진강을 임수로 하면서 독계봉과 화견산을 안산으로 하는 전형적인 명당에 집을 지었다. 풍수의 상호 보완도 고려하여 지네와 닭의 관계를 반영한 이야깃거리도 있다. 즉, 이 집의 형국을 상징하는 지네가 잘 자라도록 지네의 먹이인 벌레가 서식할 수 있게 습한 환경을 만들어 주고자 연못을 인공적으로 파고, 안산의 닭이 지네를 잡아먹지 못하도록 느티나무 64그루를 연못 앞에 식재하여 지네를 숨겨 주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정읍 김명관 고택은 집 안의 건물인 바깥 행랑채와 사랑채, 안행랑채, 안채, 안사랑채, 사당을 담장으로 구획하면서 비대칭의 미학을 도입하고 있다. 집의 배치는 외부인이 집의 내부를 곧바로 들어가는 공간 구조가 아닌 우회하여 간접적으로 들어가거나 내부가 외부인에게 바로 보이지 않도록 하는 공간 구성으로 은유적인 기법을 적용하여 배치하였다. 집의 전면과 후면에는 평상시에 머슴이 거주하고 비상시 주인이 피신하던 호지집을 지었다. 건물의 기둥, 대들보, 인방 부재들은 자연스러운 곡재를 사용하여 건축하였다. 상인방은 아래로 호를 이루는 모양을 사용하였고 하인방은 위로 호를 이루는 모양의 자재를 사용하였다. 정읍 김명관 고택은 최고의 건축적 미학을 적용한 대표적인 살림집이다.

[근대 건축]

근대 건축으로는 정읍 나용균 생가 및 사당[국가등록문화유산]이 대표적이다. 독립운동가이자 애국지사인 나용균이 생전에 살았던 집과 사당은 근대기 정읍 지역 부호의 주거 문화를 보여 주고 있다. 안채와 사랑채, 부속채로 이루어진 생가와 사당으로 이루어져 있다. 근대기 정읍 지역 부자의 주생활을 엿볼 수 있는 소중한 주생활 문화유산이다. 특히 후대에 증축과 개축을 하면서 부엌을 없애고 방을 만들고 책방과 수납 공간을 만드는 공간의 변용은 당시 집주인의 생활 내용과 취향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또한 집 뒤의 길은 동학농민운동 당시 동학군이 진격하던 도로였고 사당 후면의 대나무 숲은 동학군이 사용하는 죽창을 만들었던 장소라는 역사성과 장소성을 가지고 있는 주생활 문화유산이다.

정읍의 인문적 환경을 나타내는 특별한 주생활 문화재로 정읍 관청리 근대 한옥[국가등록문화유산]이 있다. 정읍 관청리 근대 한옥은 1940년 고부 지방의 대지주였던 조상원이 ‘보천교’ 중앙본소 건물을 1938년경 사들여 해체한 다음 재목을 활용하여 2년에 걸쳐 주택으로 고쳐 지은 것이다. 정읍시 입암면 대흥리에 있었던 보천교 중앙본소 건물은 건축 자재를 백두산의 원시림에서 가져다 썼으며 궁궐 규모의 거대한 성전이었다고 한다. 당시 심사일(沈士一)이라는 대목수가 건축하였고 경복궁에 버금가는 규모였다고 전하여지나 지금은 건물의 초석 정도만 남아 있는 상태이다. 따라서 정읍 관청리 근대 한옥은 정읍의 근대기 모습을 볼 수 있는 건축이기도 하다.

이처럼 정읍의 주생활은 정읍의 자연환경과 인문 환경을 바탕으로 오랜 세월 동안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정읍 사람들에게 가장 적합한 주생활 문화유산으로 발전하여 왔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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