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창속집』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301312
한자 後滄續集
영어공식명칭 Huchangsokjip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문헌/전적
지역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시대 근대/근대,현대/현대
집필자 정훈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간행 시기/일시 2004년연표보기 - 『후창속집』 간행
성격 문집
저자 김택술
간행자 김철중
권책 8권 4책
행자 11행 26자
규격 27㎝[세로]|18.5㎝[가로]
어미 상이엽화문어미

[정의]

2004년 간행된 정읍 출신 유학자 김택술의 문집.

[저자]

김택술(金澤述)[1884~1954]의 본관은 부안(扶安)이며, 자는 종현(鍾賢), 호는 후창(後滄)이다. 1900년 간재(艮齋) 전우(田愚)[1841~1922]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전우에게 ‘후창’이라는 호를 받았다. 1915년 일제의 상사금(賞賜金)을 꾸짖어 물리쳤으며, 큰아들을 일본인의 학교에 입학시키라는 강요를 받았으나 거부하였다. 전우는 생전에 자신의 문집을 일제 강점기에 간행하지 말 것을 부탁하였는데, 1925년 동문인 오진영(吳震泳)[1868~1944]이 스승의 유지를 무시하고 총독부의 허가를 얻어 문집을 발간하였다. 이에 김택술은 여러 동문의 선봉이 되어 오진영이 스승의 뜻을 저버렸다고 성토하였다. 광복 이후 전우의 문집 수정본을 간행하였다. 일생 동안 왜적을 타도할 기회를 엿본다는 뜻으로 불망실(不忘室)을 건립하였으며, 후학의 교육에 힘썼다. 1964년 정읍 유림들이 이평면 창동리창동서원(滄東書院)을 세우고 향사하였다. 저서로 『후창집(後滄集)』이 있다.

[편찬/간행 경위]

『후창속집(後滄續集)』은 2004년 손자 김철중에 의하여 간행되었다. 속집의 권수에는 1903년 병암(炳菴) 김준영(金駿榮)[1842~1907]이 김택술에게 써 준 서간 「증김종현서(贈金鍾賢序)」를 서문으로 삼았고, 김준영의 글을 서문으로 쓴 연유는 아들 김형관(金炯觀)이 발문에서 밝혔다.

[형태/서지]

『후창속집』은 8권 4책 석인본(石印本)이다. 한 면은 11행 26자로 된 석인본이며, 책 크기는 27㎝, 18.5㎝이다. 어미는 상이엽화문어미(上二葉花紋魚尾)이며, 발문은 1994년 셋째 아들 김형관이 작성하였다.

[구성/내용]

『후창속집』 권1부터 권3까지는 김택술의 스승인 전우와 문인들이 주고받았던 서간문을 모아 놓았다. 권4는 잡저로서, 『주자어류』를 읽고서 의문을 가진 여러 부분에 대하여 자신의 경학 및 역사, 이단 등을 밝힌 「독어류의목」 등이 있다. 권5는 서(序), 기(記), 제발(題跋), 명(銘), 찬(贊) 등으로 구성되었다. 권6은 시문이 배치되어 있다. 권7과 권8은 부록이다. 권7에는 김택술의 연보를 실었다. 생애와 업적, 그리고 저술 활동 등을 자세히 서술하였다.

[의의와 평가]

김택술의 살았던 당시에는 한학이 쇠퇴하고 신학문이 급속히 유입되던 시기였다. 김택술은 당시 시대적 풍조와 관련하여 「호남학보변(湖南學報辨)」, 「창동문답(滄東問答)」 등에서 신학문의 모순점과 한학의 정통성을 논변하였다. 근현대 한학을 닦은 유학자로서의 면모를 드러내었다고 할 수 있다. 김택술의 사상은 일제의 창씨개명에 불응하고, 일제가 주는 상사금을 물리치는 행동의 근간이 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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