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301322 |
---|---|
한자 | 井邑詞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
시대 | 고대/삼국 시대/백제 |
집필자 | 김영미 |
[정의]
백제 시대부터 정읍 지역에서 전승되어 온 작자 미상의 가요.
[개설]
「정읍사(井邑詞)」는 백제 시대부터 민간에서 구전되어 온 가요로 알려져 있다. 조선 시대에 편찬된 악서인 『악학궤범(樂學軌範)』 권5 ‘시용향악정재조(時用鄕樂呈才條)’에 노래 가사가 「동동(動動)」, 「처용가(處容歌)」, 「정과정(鄭瓜亭)」 등의 고려 가요와 함께 실려 전하게 되었다. 조선 전기에 편찬된 『고려사(高麗史)』 악지2 ‘삼국속악조(三國俗樂條)’에서는 「정읍사」를 ‘백제 속악’으로 기록하고 있다.
[구성]
『악학궤범』에 수록된 「정읍사」의 원문은 다음과 같다.
[전강(前腔)] 하 노피곰 도샤/ 어긔야 머리곰 비취오시라/ 어긔야 어강됴리
[소엽(小葉)] 아으 다롱디리
[후강(後腔)] 전(全)져재 녀러신고요/ 어긔야 즌 드욜셰라/ 어긔야 어강됴리
[과편(過篇)] 어느이다 노코시라
[금선조(金善調)] 어긔야 내 가논 졈그셰라/ 어긔야 어강됴리
[소엽] 아으 다롱디리
전강·후강·과편·금선조·소엽 등의 명칭은 모두 곡조 이름이다. 시의 형식은 11행이고, 후렴을 뺀 기본 시행(詩行)만으로 본다면 3연 6구의 형식이 된다. 또 각 연의 음절 수가 3음 또는 4음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 시조의 3장 6구 형식의 근원을 「정읍사」에서 찾고자 하는 경향도 있다.
[내용]
「정읍사」를 현대어로 해석하면 다음과 같다.
[전강] 달아 높이 돋으시어/ 어기야 멀리 비추어 주소서/ 어기야 어강됴리
[소엽] 아으 다롱디리
[후강] (전주) 시장에 가 계시옵니까/ 어기야 진 곳을 디딜세라[위험한 곳을 디딜까 염려됩니다]/ 어기야 어강됴리
[과편] 어느 것에다 놓고 계시는가
[금선조] 어기야 당신 가는 곳에 저물세라[날 저물까 두렵습니다]/어기야 어강됴리
[소엽] 아으 다롱디리
먼저 제1연은 행상을 나가 오래도록 돌아오지 않는 남편의 무사와 안녕을 달에게 기원하는 여인의 간절한 발원으로 시작된다. 제2연에서 여인은 오래도록 돌아오지 않는 남편의 소식을 몰라 애태우며 남편이 ‘진 데[위험한 곳]’에 가 있을까 불안해하고 의심한다. 여인은 불안한 자신의 마음을 붙잡고자 ‘혹시 지금쯤 전주 저자에 가 계시는지요’라는 가정의 의문을 던지고 있다.
어절 풀이에서 첫 음절을 ‘져재’ 또는 ‘전져재’로 보는 두 갈래의 학설이 양립되어 있다. ‘후강전(後腔全)’까지를 악조명으로 보고, 가사 본문을 ‘져재’로만 보기도 한다. 또 ‘전(全)져재’에서 ‘전(全)’을 ‘전주’로 해석하여 ‘전주 저자에’로 해석하기도 하고, ‘전(全)’을 ‘온전한, 온’의 의미로 해석하여 ‘온 저자에’라고 보는 이설도 있다.
제3연에서는 남편의 신변에 관하여 불안과 의구심이 절정에 이른다. 여인은 남편이 행상으로 버는 돈은 중요하지 않으며 오직 남편이 무사히 돌아오기만을 바라는 간절한 마음에서 ‘어느 것이나[무엇이나] 다 놓아두고’ 집으로 돌아오기를 바란다. 그러고는 다시 임이 가는 곳이 저물어 돌아오지 못할까 혹은 위험에 처할까 두려워하고 있다.
결연은 가장 이설이 많다. ‘어느이다’를 ‘어늬다’로 보고 ‘어느 곳에다가’ 또는 ‘어디에나[어느 곳에나]’로 해석하는가 하면, ‘어이다’ 또는 ‘어찌다[자칫하면]’로 보기도 하고, 또 ‘어느 누구에다’ 혹은 ‘어느 것에다’로 해석하기도 한다. ‘어긔야’는 감탄사이며 ‘어기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는 음악적 효과가 있는 여음구이다.
[특징]
「정읍사」는 시가 형태 면에서 삼국 시대 백제가요이지만 오랜 세월 구전되는 사이에, 또 고려 속요와 함께 속악으로 불려오는 동안 고려 속요의 성격과 속악으로서의 성격으로 변모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고려 속악 가사들이 일관되게 후렴구를 지니고 있는 것과 같이, 불안정하기는 하지만 「정읍사」 역시 “어기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 같은 여음구가 있음을 통하여 짐작할 수 있다.
[의의와 평가]
「정읍사」는 삼국 시대의 고대 가요로 현존하는 유일한 백제 문학이다. 백제 멸망 이후 정읍 및 전북특별자치도 일대를 중심으로 약 1,000년 동안 불려지다가 조선 성종 대에 이르러 문헌에 정착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전승되는 과정에서 원형이 변형되었음을 감안한다고 하여도 한글로 표기된 노래 중 가장 오래된 노래로서 가치가 매우 크다. 「정읍사」는 남편의 무사 귀환을 기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현대에 이르러서는 정읍을 대표하는 정신적·상징적 표상으로 자리 잡았다. 또한 정읍뿐만 아니라 한국 문학사에서 ‘망부석’의 한 모티프를 형성하여 한국적 ‘한’의 표상에 활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