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 지방 선비문화의 성지, 태산선비마을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300018
분야 생활·민속/생활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지역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성식

[정의]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칠보면 등 정읍 동부권의 서원, 사우, 누정, 향교, 효열 정려비 등의 역사 문화 자원을 문화 관광으로 연계한 농촌형 체험 휴양 마을.

[개설]

태산선비마을은 넓게는 호남 지방에서 선비문화유산이 가장 많은 지역인 정읍시의 칠보, 산내, 산외, 옹동, 태인, 북면을 아우르는 권역이고, 좁게는 태산선비문화권의 대표적인 유적인 정읍 무성서원이 자리한 칠보면 무성리시산리 일대를 말한다. 무성리에는 원촌마을과 은석마을이 있으며, 시산리에는 건흥마을, 시기마을, 송산, 남전, 동편, 복호, 행단 마을이 있다. 무성리에는 무성서원을 비롯하여 태산선비문화사료관, 후송정, 시산사, 송산사 등의 선비문화 유적이 있고, 시산리에는 감운정, 정순왕후 태생지, 태인 고현동 향약 등 역사적 내력을 간직한 유적이 있다.

[호남 지방 선비문화의 성지, 태산선비마을의 역사적 배경]

태산선비마을을 깊이 있게 이해하려면 과거에서 현재까지 이어지는 역사적 배경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와 관련하여 가장 먼저 기억하여야 할 인물이 최치원(崔致遠)[857~?]이다. 최치원은 경주 사람이며, 12세 때 당나라에 유학 갈 정도로 천재였다. 당나라에서 과거 급제 등 문명을 떨치고 29세 때 귀국한다. 그러나 신라 사회가 진골과 성골 등 귀족 중심의 강고한 신분 체제라는 점과 심각한 국정 문란 등을 깨달은 최치원은 차라리 외직을 자처하여 890년, 34세의 나이로 태산군태수가 된다. 태산군은 백제의 대시산군(大尸山郡)이 신라 경덕왕 때 개명된 고을 명칭이다. 태산군은 다시 조선 초인 1409년에 인의현과 합병하여 중간 지대에 일종의 신도시인 태인현을 조성한다. 이때 태산군이 폐지되면서 옛 치소가 됨으로써 태인현 고현면(古縣面)이 되었으며, 조선 시대 내내 ‘고현내’로 불리었다. 최치원의 태산군태수 재임 기간은 길지 않았지만 최치원은 선정을 베풀고 고을민들의 교화에 힘쓰다 함양군수로 이직을 하였고, 백성들은 최치원을 잊지 못하여 현 정읍 무성서원 뒷산에 생사당(生祠堂)을 지었다. 생사당은 해당 인물이 살아 있음에도 제사를 드리는 사우(祠宇)를 말한다. 고려 때는 최치원 사당을 성황산 서쪽 능선의 월연대 아래에 건립하고 태산사(泰山祠)라 하였다. 즉 고려 시대 태산 고을민들도 최치원을 추모하여 고을의 성황신으로 모셨던 것이다.

조선 시대에 들어 또 한 명의 인물이 생사당에 배향된다. 1543년(중종 38), 53세의 늦은 나이로 태인현감으로 부임한 신잠(申潛)[1491~1554]이다. 서울 출신인 신잠은 신숙주의 증손으로 23세 때 진사시에서 1등 장원을 하였고, 29세 때 현량과에 천거되어 예문관검열에 보임된다. 그러나 불운하게도 신사무옥(辛巳誣獄), 기묘사화(己卯士禍)에 연루되어 17년 동안 전라도 장흥부로 유배되는 등 야인으로 살다가 1543년에 천거를 받고 태인현감으로 부임하였다. 신잠은 온갖 정성을 다하여 고을의 예의를 일으키고 풍속을 교화하며 인재를 양성하였다. 태인의 강학적 전통을 토대로 현내에 5학당을 개설하여 흥학의 기틀을 마련한 것이다. 신잠이 6년 동안 태인현감을 지낸 뒤 강원도 간성군수로 이임하자 태인 현민들은 생사당을 건립하여 신잠을 기렸다.

1615년(광해 7) 태인의 선비들은 태산사에 모셔져 있던 최치원과 향학 진흥에 공이 컸던 신잠을 합향하기 위하여 서원을 건립하였다. 본래 태산서원이었던 것을 1696년(숙종 22)에 사액(賜額)되면서 비로소 무성서원(武城書院)이 탄생한다. 사우에는 애초 고운 최치원영천 신잠만 배향되었다가 1630년(인조 8) 불우헌(不憂軒) 정극인(丁克仁), 눌암 송세림, 묵재 정언충, 성재 김약묵이 추배되고, 1675년(숙종 1)에 명천 김관이 추배된다. 무성서원은 그 뒤 1784년(정조 8)에 쌍계사로부터 최치원 영정을 봉안하여 왔다. 무성서원은 1868년(고종 5) 서원철폐령에 따라 위기를 맞았으나 당시의 현감, 유림 등이 청원하여 전북 지역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았다. 이때 전라도에서 화를 피한 서원은 필암서원, 포충서원과 함께 무성서원뿐이다.

한편 정읍 무성서원을 비롯하여 장구한 세월 동안 태산선비 학맥과 선비정신이 이어진 데에는 ‘고현동 향약’이라는 중요한 밑거름이 있었다. 현재 칠보면 시산리의 동각(洞閣)에 소장된 태인 고현동 향약 관련 29책의 향약서가 1993년에 보물로 지정되었다. 이 동각은 영광 정씨(靈光 丁氏), 여산 송씨(礪山 宋氏), 경주 정씨(慶州鄭氏), 청도 김씨(淸道金氏), 도강 김씨(道康 金氏) 등 최초 회원인 오대 문중의 후손들이 돌려가며 유사를 선임하여 관리하고 있다. 이 서책은 고현동에서 향약이 결성된 임진왜란 전후 시기부터 1977년까지 400여 년 동안 기록한 필사본 향약 자료집이다. 이를 동안(洞案)이라고 한다. 이 자료집은 불우헌 정극인이 사간원정언(司諫院正言)을 사임하고 태인현 고현동으로 옮겨 살면서 현지 주민의 도의선양과 상호친목, 권선징악의 미풍양속을 권장, 교도하려는 목적으로 향음례(鄕飮禮)를 시행하고, 1475년(성종 6)에 작성한 『태인현동중향음서(泰仁縣洞中鄕飮序)』에 의하여 계승된 향약 문헌들이다.

향약은 향촌규약(鄕村規約)의 준말로, 지방의 향인들이 서로 도우며 살아가자는 약속이다. 향약의 시초는 중국의 「여씨향약」이지만, 조선 시대에 보급·시행된 향약은 우리의 전통적인 공동체적 상부상조의 정신에 유교적 가치를 더하여 재편한 것이다. 원칙적으로 향약은 조선 시대 양반들의 향촌자치와 이를 통하여 하층민을 통제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유교적 예절과 풍속을 향촌 사회에 보급하여 도덕적 질서를 확립하고, 미풍양속을 진작시키며, 각종 재난을 당하였을 때 상부상조하기 위한 규약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듯 태산 고현동 향약 정신이 400년 이상 유지되면서 태산선비문화를 계승, 발전시켜 온 것이다.

[21세기 태산선비마을의 재탄생]

태산선비마을은 역사 문화 자원을 활용한 마을 만들기 사업 일환으로 출발하였으며, 태동은 2013년이다. 당시 농림축산식품부에서 주관한 농촌 휴양 마을 공모 사업에 ‘태산선비마을’이 선정된 것이다. 이후 태산선비마을은 ‘태산선비농촌체험휴양마을’로 운영되고 있다. 이 지역의 역사문화유산을 문화 관광 자원으로 활용하기 위하여 여러 종류의 체험 시설이 조성되었다. 대표 시설이 태산선비문화체험관이다. 또 행정안전부가 주관하는 마을 기업 사업에도 선정되어 원촌마을회가 운영하는 두부 만들기 체험도 시행되고 있다. 이 밖에도 농사 체험, 특산물을 이용한 가공 체험, 향토 음식 체험 등도 운영하면서 주민 소득 증대와 도농 교류 활성화로 주민들의 생활 수준 향상에 기여하고 있다. 이 지역 주민들은 태산선비문화체험관과 마을 기업 등을 공동 운영하면서 공동체 의식에 기반한 연대와 협업에 특화된 지역으로 거듭나고 있다.

태산선비마을에서는 주제별로 체험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선비문화 체험으로는 선비 예절과 다례, 선비 놀이인 쌍육과 고누놀이, 선비 학문 탐구 기본 붓글씨와 탁본, 선비의 향사례(鄕射禮) 전통 국궁 체험 등이 시행되고 있다. 우리 음식 체험으로는 오색비빔밥, 약선연잎밥, 우리 떡 만들기[인절미, 화전, 절편, 증편 등], 한식 디저트[강정, 양갱, 오미자 원소병 등] 음식 체험이 시행되고 있다. 이 밖에도 공예 체험으로 한지등, 한지 부채, 자개 풍경, 장승 만들기, 천연염색 등이 준비되어 있고, 전통 놀이로는 연날리기, 굴렁쇠, 투호, 그네 타기 등이 마련되어 있다.

[태산선비마을 체험 및 관광 인프라 시설]

1) 태산선비문화체험관

2013년부터 운영한 태산선비문화체험관은 숙박을 겸하는 입소형 체험 시설이다. 최대 50명이 숙박할 수 있으며, 체험실, 세미나실, 야외 공연장, 운동 시설 등이 구비되어 있다. 운동 시설도 다양한다. 축구와 농구는 물론이고 풋살장과 씨름장도 있다. 특히 씨름장은 칠보초등학교 씨름선수를 비롯하여 전국의 학교 씨름선수단이 전지 훈련장으로 애용하고 있다. 태산선비문화체험관에는 이 외에도 야외무대, 캠프파이어장, 바비큐장, 원두막 등의 시설을 갖추고 있다. 태산선비문화체험관 숙박용 객실은 규모가 서로 다른 7개 실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각의 명칭이 특이하다. 칠보면의 명칭은 칠보산에서 비롯되었다. 7개의 보물이 있다는 뜻이며, 이는 곧 태산선비문화마을의 보물이다. 이 7개의 보물을 객실 명칭으로 차용하여 ‘상춘곡실’, ‘무성서원실’, ‘화경폭포실’, ‘분충거의실’, ‘고현향약실’, ‘정순왕후실’, ‘공신녹권실’이라 하였다.

상춘곡(賞春曲)불우헌 정극인이 옛 지명인 태산에서 지은 최초의 가사 문학을 말한다. 정읍 무성서원(井邑 武城書院)은 2019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한국의 서원 가운데 하나로, 신라 후기의 학자 최치원과 조선 중종 때 태인현감 신잠을 배향하고 있다. 화경폭포(火鏡瀑布)는 우리나라 최초의 유역 변경식 수력 발전소인 칠보수력발전소에 조성된 3개의 인공 폭포를 지칭한다. 분충거의(奮忠擧義)는 임진왜란 때 전주 경기전 내 전주사고에 보관된 『조선왕조실록』과 태조 영정을 내장사 용굴암으로 옮김으로써 실록을 지켜 낸 정읍의 선비 안의[1529~1596]와 송흥록[1537~1610]의 충의를 기리는 말이다. 고현향약(古縣鄕約)은 우리나라 최초로 조직된 자치 규약을 말한다. 고현향약은 퇴계 이황의 예인향약[1556년]이나 서원향약[1571년]보다 앞서서 조직되었다. 정순왕후(定順王后)는 단종의 정비 송씨[1440~1521]의 태생지가 바로 칠보라는 것을 말하며, 끝으로 공신녹권(功臣錄券)은 충민공 김회련김회련 개국원종공신녹권[보물]이라는 조선 시대 문서가 칠보 도봉사에 소장되어 있었다는 데서 차용한 이름이며, 즉 김회련이 태조 이성계에게 조선 건국의 공을 인정받은 문서를 말한다.

태산선비문화체험관은 일정별로 맞춤형 프로그램을 갖추고 있다. 먼저 1일 체험 학습 프로그램으로 ‘개구쟁이 선비 되다’와 ‘선비의 하루 체험’이 운영되고 있다. 이어 1박 2일 체험 학습 프로그램도 ‘태산선비문화체험 청소년 프로그램’과 ‘가족·일반인 프로그램’으로 두 가지 유형을 운영한다.

2) 태산선비문화사료관

태산선비문화사료관에서는 정읍의 동부권, 즉 호남에서 선비문화유산이 가장 많은 정읍시 칠보면, 산내면, 산외면, 옹동면, 태인면, 북면에 위치한 역사, 서원, 사우, 누정, 향교, 효열정려 등 주요 문화 자원을 소개하고 있다. 부지 2,500㎡, 연면적 205㎡ 규모로 사료전시실과 사무실이 갖추어져 있다. 태산선비문화사료관은 1998년에 개관하였으며, 2006년에는 정극인 동상과 상춘곡 노래비를 추가 건립하였다. 사료전시실에는 태산선비문화의 주역들과 관련 문화유산을 소개하고 있다. 태산선비문화마을의 대표적 문화유산인 2개의 서원과 10여 개의 사우, 20여 개의 효열정려, 10여 개의 누정에 대하여 사진과 함께 설명을 더한 패널이 전시되어 있다. 또 고현동향약, 정극인상춘곡, 산외면 정읍 김명관 고택[국가민속문화유산] 등 유형 및 무형의 문화 자원에 대하여서도 패널로 소개되어 있고, 30여 점의 진품 유물도 감상할 수 있다.

해동 유학의 창시자로 평가되는 고운 최치원이 886년 태산군태수로 부임하여 유교적 교화를 뿌리내린 이래 절조와 온후를 겸비한 선비 기질의 유풍이 오늘에 이르기까지 계승되면서 유학적 선비 인맥이 형성되었다. 특히 고려 시대에 이어 조선 시대에 와서 김회련, 정극인, 신잠, 이항 등 올곧은 선비·절의 정신으로 이어졌고, 이후 임진왜란 당시 창의, 한말의 의병 거사 등 선비정신의 실천적 중심 도장으로 그 맥을 잇고 있다. 이렇듯 선비문화의 맥이 형성된 이 지역의 역사문화 현장을 엮어 이른바 ‘태산선비문화권’이라고 일컫는다. 사료관 인접 지역에는 정읍 무성서원[사적], 태인 고현동 향약[보물], 유상대 터, 송정, 남천사, 시산사, 정극인 묘소 등 유교 문화를 느끼고 체험할 수 있는 다양한 문화유산이 존재한다.

3) 칠보 물테마유원지

태산선비문화권의 빼어난 경관은 칠보산동진강에서 비롯된다. 무성서원 뒷산이 칠보산 끝자락이다. 동진강 본류는 태산선비마을이 있는 칠보에서 풍부한 수량을 확보하게 된다. 유역 변경식 칠보 수력 발전 후 동진강으로 방류되기 때문이다. 수량이 풍부한 동진강 상류는 예로부터 여름철 유원지 명소였다. 옥정호와 풍부한 동진강 청정 수 자원에 기반하여 정읍시에서는 어린이들에게 안전하고 재미있는 물놀이 공간을 제공하기 위하여 2010년에 칠보물테마유원지를 개장하였다. 칠보물테마유원지태인, 칠보, 산외, 산내를 중심으로 한 태산선비문화권의 전통문화와 연계한 체험 및 탐구 학습 공간을 겸한 놀이형 관광 시설 인프라가 구축된 사업이다.

전국 최대 물 체험 학습 놀이 공간으로 평가받는 칠보물테마유원지는 태산선비문화권의 중심지인 칠보면 무성리 5만 2487㎡의 부지에 조성되었다. 물의 생성과 순환 등 물에 관한 모든 궁금증을 한번에 해소할 수 있는 2층 규모의 물테마전시관[975㎡]을 비롯하여 선비들의 풍류문화 시설인 유상대(流觴臺)[792㎡]를 재현하였으며, 야생화관찰원[4,192㎡], 수생식물원[2,013㎡], 분수대[115㎡], 인공폭포[207㎡] 등이 설치되었다. 또 체험전시관에는 물레방아, 수차 등 물 이용 시설과 수력 발전 시설 미니어처 등 탐구 학습 시설도 갖추었다. 2030㎡ 면적의 물놀이장에는 어린이풀장과 유아풀장이 설치되어 있고, 워터터널, 워터스프레이, 바디슬라이드 등 각종 놀이 시설도 갖추어 놓았다.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안전 요원과 응급 구조 요원이 상시 배치되어 안전한 물놀이를 최대 목표로 운영하고 있다.

한편 ‘칠보 물테마유원지’에도 태산선비문화마을다운 체험 시설이 설치되어 있는데, 다름 아닌 유상곡수(流觴曲水)를 재현한 유상대가 있다. 유상대는 신라 말 최치원이 태산군수로 재직하면서, 흐르는 물에 술잔을 띄워 놓고 시 문답을 즐긴 풍류 곡수로 유명하다. 경주의 포석정과 비견된다. 사료에 따르면 중국 동진 시대의 명필 왕희지 등 당대의 학자들이 ‘난정’이라는 곳에 곡수(曲水)를 만들고, 상류에서 술잔을 띄워 그 술잔이 자기 앞에 이르는 동안 운(韻)을 맞춰 시를 지으며 유상곡수를 즐겼다고 한다. 칠보물테마유원지에 재현된 유상대는 인공폭포 아래에 깎은 대리석들을 이어 붙여 길이 약 20m로 설치되었으며, 20명이 넘게 둘러앉아 유상곡수연(流觴曲水宴)을 즐길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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