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3003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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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泰仁縣邑誌』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최진성 |
[정의]
1789년 현재의 정읍 지역인 태인현의 연혁, 인문 지리, 행정 등을 수록하여 편찬한 읍지.
[개설]
전라도 태인현 지역은 백제 때 대시산군(大尸山郡)과 빈굴현(賓屈縣)이 있었다. 대시산군은 신라에서 태산군(太山郡)으로 이름이 바뀌고, 빈굴현(賓屈縣)은 신라에서 무성현(武城縣), 고려 시대에 인의현(仁義縣)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조선 시대에 들어와서 1409년(태종 9) 태산군과 인의현을 합쳐 태인현을 만들었다. 태인현은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전라북도 정읍군에 통합되었다. 현재의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신태인읍·태인면·옹동면·산외면·감곡면·칠보면·산내면에 해당한다.
[저자]
『태인현읍지(泰仁縣邑誌)』는 전라도 태인현에서 편찬하였다.
[편찬/간행 경위]
『태인현읍지(泰仁縣邑誌)』는 항목 구성으로 미루어 1788년부터 1796년에 수행된 전국 지리지인 『해동여지통재(海東輿地通載)』의 편찬 작업의 일환으로 작성된 읍지인 것으로 추정된다.
[형태/서지]
『태인현읍지』는 필사본이며, 1책 17장으로 되어 있고, 채색 지도가 1장 2면으로 삽입되어 있다. 크기는 세로 35.7㎝, 가로 22.3㎝이며, 표제는 ‘태인현읍지’이다. 2024년 현재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태인현읍지』의 목차는 태인현지도(泰仁縣地圖), 건치연혁(建置沿革), 군명(郡名), 관직(官職), 방리(坊里), 도로(道路), 성지(城池), 산천(山川), 성씨(姓氏), 풍속(風俗), 학교(學校), 서원(書院), 단묘(壇廟), 공해(公廨), 관애(關阨), 봉수(烽燧), 제언(堤堰), 장시(場市), 교량(橋梁), 역원(驛院), 사찰(寺刹), 누정(樓亭), 형승(形勝), 물산(物産), 진공(進貢), 상납(上納), 호구(戶口), 전총(田摠), 과세(田稅), 대동(大同), 균세(均稅), 봉름(俸廩), 요역(徭役), 창고(倉庫), 조적(糴糶), 군기(軍器), 군액(軍額), 노비(奴婢), 선생안(先生案), 인물[孝子, 烈女, 義士], 과환(科宦), 고적(古蹟), 책판(册板), 첨부 문서 등이다. 읍지의 항목 구성을 보면 그동안의 읍지 계통을 수렴하여 중앙 정부의 관심이 큰 통치 기초 정보와 지역민의 관심이 큰 인물 정보를 적절히 종합하였음을 알 수 있다. 『태인현읍지』에 수록한 지도는 읍치를 중심에 두고 도로, 산 줄기, 물의 흐름을 그리고, 주변의 면 이름과 사찰·서원 이름, 접경 고을 등을 기록하였으며, 아사(衙舍)와 객사, 향교, 피향정 등의 건물을 그리고 각각의 명칭을 표시하였다. 관아를 중심으로 동쪽으로 남고서원·무성서원·석탄사가 보이고, 동남쪽에 보림사가 보인다. 또한 18세기 말 전라도 태인현의 각 면 이름, 토지 결수, 호구 숫자, 장시나 제언, 교량의 이름, 조세·재정 내역 등을 알려주고 있다. 특히 풍부한 인물 정보를 담고 있는데, 인물을 효자(孝子), 열녀(烈女), 의사(義士) 등 세부 항목을 설정하여 기술하였다. 『태인현읍지』와는 별도로 맨 뒤에는 13장 분량의 문서가 첨부되어 있다. 이 문서는 기재 양식을 인쇄한 종이에 펜으로 태인현의 건치연혁과 인물들을 간추려 기록한 것으로 미루어 일제 강점기에 작성하여 첨부한 것으로 보인다.
[의의와 평가]
『태인현읍지』는 『여지도서』에는 없는 장시, 상납, 책판 등의 항목을 새롭게 설정하고 있다. 이는 전라도 태인현의 독자적 시도가 아니라 전국 지리지 편찬 작업 과정에 중앙에서 하달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장시 항목은 장시 이름, 소재지 등의 현황을 기록하고, 상납은 상납 내역을 기관별로 정리하여 기록하고, 책판은 고을 내에 있는 책판 목록을 기록하였다. 『태인현읍지』는 분량은 적지만 다양한 항목을 설정하여 18세기 말 통치를 위한 기초 정보와 지역의 인물 정보, 문화 정보를 풍부하게 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