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3004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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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古沙夫里郡 |
이칭/별칭 | 고묘부리군(古眇夫里郡),고부군,중방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 |
지역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고부면|덕천면|소성면|영원면|이평면|정우면 |
시대 | 고대/삼국 시대/백제 |
집필자 | 박노석 |
[정의]
삼국 시대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소성면, 영원면, 이평면, 정우면 일대에 있던 백제의 지방 행정 구역.
[개설]
고사부리군(古沙夫里郡)은 삼국 시대 백제에서 지금의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고부면·영원면 일대 지역에 설치한 지방 행정 구역이다. 『삼국사기(三國史記)』 판본에 따라서 글자가 약간씩 다르다. 즉, 정덕본에서는 고묘부리군(古眇夫里郡)으로, 을해목활자본에는 고사부리(古沙夫里)로 되어 있다. 다른 자료들에는 고사부리(古沙夫里)로 되어 있다. 사비 시대에는 고사부리에 중방성을 설치하였다.
[제정 경위 및 목적]
백제 때 지방 행정을 원활히 하기 위하여 설치하였다.
[관련 기록]
『삼국사기』 권제5 신라본기 제5 태종무열왕 8년 3월 조에 “12일에 [신라에서] 대군을 보내어 고사비성 밖에 주둔하고 두량윤성을 공격하였으나 한 달 6일 동안 공격하였으나 [백제를] 이기지 못하였다[十二日, 大軍來屯古沙比城外, 進攻豆良尹城, 一朔有六日, 不克]”라고 되어 있다.
『삼국사기』 권제23 백제본기 제1 온조왕 36년 조에 “8월에 원산과 금현 2개의 성을 수리하고, 고사부리성을 쌓았다[八月, 修葺圎山·錦峴二城, 築古沙夫里城]”라고 되어 있다.
『삼국사기』 권제28, 백제본기 제6 의자왕 21년 3월 조에 “이때에 신라왕 [김]춘추가 조서를 받들어 장군 김흠을 보내어 장병을 거느리고 가서 [유]인궤 등을 구원하게 하였다. [김흠이] 고사에 이르자 복신이 맞아쳐서 패배시키니 [김]흠이 갈령도로 도망하여 돌아갔으며 신라는 감히 다시 출동하지 못하였다[羅王春秋奉詔, 遣其將金欽, 將兵救仁軌等. 至古泗, 福信邀擊敗之. 欽自葛嶺道遁還, 新羅不敢復出]”라고 되어 있다.
『삼국사기』 권제36 잡지 제5 지리3 신라 조에 “고부군은 본래 백제의 고사부리군인데, 경덕왕이 이름을 바꾸었고, 지금도 그대로이다. 영현은 3개이다[古阜郡, 本百濟古沙夫里郡, 景徳王改名. 今因之. 領縣三]”라고 되어 있다.
『고려사』 지 권제11에 “고부군은 본래 백제의 고사부리군인데, 신라의 경덕왕이 지금의 이름[고부군]으로 바꾸었다[古阜郡 本百濟古沙夫里郡, 新羅景德王, 改今名]”라고 되어 있다.
『세종실록』 151권, 「지리지」 전라도 전주부 고부군 조에는 “고부군은 본래 백제의 고사부리군인데, 신라에서 바꾸어 고부군이라 하였다[古阜郡: 本百濟 古沙夫 里郡, 新羅改爲古阜郡]”라고 되어 있다.
[내용]
18년(온조왕 36)에 백제에서 고사부리성을 쌓은 것으로 나온다. 이때의 고사부리를 지금의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고부면 지역으로 보아야 하는가 여부에 대하여서는 좀 더 연구가 필요하다. 백제의 영역으로 편제된 이후에 백제에서는 고사부리군을 설치하였으며, 사비로 천도한 이후에는 중방을 설치하여 주변 지역을 관할하였다. 백제가 멸망한 뒤 백제부흥군은 지금의 전북특별자치도 부안군에 있던 주류성을 근거로 신라와 당의 연합군과 전쟁을 벌였다. 전쟁 과정에서 661년(의자왕 21, 무열왕 8) 3월 신라군이 고사비성 밖에 주둔하면서 두량윤성을 공격하였으나 이기지 못하고 돌아가기도 하였다.
백제 때 고부군의 치소에 대하여서는 지금의 정읍시 고부면으로 보기도 하지만, 은선리 고분군 등이 있는 정읍시 영원면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고사부리군의 영역은 현재의 정읍시 고부면, 덕천면, 소성면, 영원면, 이평면, 정우면과 전라북도 부안군 백산면 일대에 해당한다.
[변천]
삼국 시대 백제의 고사부리군을 남북국 시대 신라에서 757년(경덕왕 16) 고부군(古阜郡)으로 변경하였다. 고려 시대에는 936년(태조 19) 영주(瀛州)로 변경하고 관찰사(觀察使)를 파견하였다가, 951년(광종 2)에 안남도호부(安南都護府)로 변경하였다. 1019년(현종 10) 고부군(古阜郡)으로 변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