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300658
한자 崔景善
영어공식명칭 Choi Gyeongseon
이칭/별칭 최병석(崔炳碩),최영창(崔永昌),최만석(崔萬碩),낙필(洛弼),경선(卿善)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인물/인물(일반)
지역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조광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59년 11월 18일연표보기 - 최경선 출생
활동 시기/일시 1894년 1월 10일 - 최경선 고부농민봉기 참여
활동 시기/일시 1894년 3월 26일 - 최경선 농학농민군 영솔장 추대
활동 시기/일시 1894년 12월 - 최경선 관군에 체포
몰년 시기/일시 1895년 3월 30일연표보기 - 최경선 사망
출생지 태인현 서촌면 월천리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북면 마정리 월천마을지도보기
거주|이주지 태인 주산리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태인면 태서리 주산마을지도보기
묘소 최경선 묘소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칠보면 축현리 31-1 지도보기
성격 동학농민혁명 지도자
성별 남성
본관 전주
대표 경력 동학농민군 영솔장

[정의]

개항기 정읍 출신의 동학농민혁명 사발통문 서명자이자 동학농민군 지도자.

[가계]

최경선(崔景善)[1859~1895]의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아버지는 최성룡(崔成龍)이다. 전주 최씨 도사공파(都事公派) 족보에는 이름이 최병석(崔炳碩), 자는 낙필(洛弼), 어릴 적 이름은 최만석(崔萬碩)으로 올라 있다. 판결문에는 이름 최영창(崔永昌), 자는 경선(卿善)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부인은 정씨(鄭氏)이고, 아들은 최인식(崔寅植), 사위는 이가춘(李可春)·박창규(朴昌圭)이다. 아들 최인식이 어릴 적 사망하여 큰형 최영대(崔永大)의 아들 최헌규가 1925년 무렵 최경선의 양자로 입적되었다.

[활동 사항]

최경선은 1859년(철종 10) 11월 18일 전라도 태인현 서촌면 월천리[현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북면 마정리 월천마을]에서 태어나 주산리[현 정읍시 태인면 태서리 주산마을]로 거처를 옮겼다. 이후 장성하여서는 동학에 입도하였고, 1893년(고종 30) 11월에 고부군수 조병갑(趙秉甲)을 몰아내고 전주성을 점령한 후 한양으로 올라가 중앙 권신들을 척결하여 당시 조선 사회가 안고 있던 모순을 해결하고자 송두호(宋斗浩)·전봉준(全琫準) 등 19인과 함께 사발통문 봉기 계획에 참여하였다.

최경선은 1894년 1월 10일 고부농민봉기를 이끌었고, 3월에 백산봉기가 일어나자 태인현에서 동학농민군을 모아 백산으로 향하였고 민의에 따라 영솔장(領率將)으로 추대되었다. 최경선황토현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고 정읍·흥덕·고창·무장·영광·함평·장성을 지나 전주성을 점령하는 데 중심적 역할을 하였다. 전주성 해산 후에는 전봉준과 함께 장성·담양·옥과·남원·창평·순천·운봉을 순회하면서 동학농민군을 독려하고 태인으로 돌아와 집강소 활동을 전개하였다.

1894년 청일 전쟁 승리 이후 일본의 침략이 노골화되자 척왜의 깃발 아래 전라도 삼례에서 2차 봉기가 일어났다. 이 소식을 들은 최경선태인현에서 동학농민군을 이끌고 전봉준보다 조금 늦게 삼례에 도착하였다. 최경선은 삼례에서 대엿새 머물며 봉기 준비를 하다가 더 많은 동지를 규합하고자 광주·나주 지역으로 이동하였다. 이후 전봉준의 주력 부대가 공주 방면으로 북상하였을 때 최경선도 즉시 공주로 향하였다가 일본군이 바다로 쳐들어온다는 첩보가 있어 손화중(孫華仲)과 함께 광주를 지키기 위하여 남하하였다.

전봉준 부대가 공주 및 태인 전투에서 패전하자 최경선손화중과 함께 동학농민군을 모아 나주성을 포위하고 있다가 여의치 않게 되자 11월 27일 전라도 광주로 이동하였다. 12월 7일 남평(南平)[현 전라남도 나주시 남평읍]을 거쳐 12월 3일 동복현(同福縣)[현 전라남도 화순군 동북면·이서면·북면·남면 일대] 벽성(碧城)에서 동학농민군 220명을 거느리고 관군과 접전을 벌이다가 사로잡혀 담양에 주둔한 일본군에 인도되었다. 최경선은 한양으로 압송되어 심문을 받은 뒤 1895년 3월 29일 전봉준·손화중 등과 함께 사형 선고를 받고 이튿날인 3월 30일 교수형이 집행되어 사망하였다.

[묘소]

최경선의 묘소는 정읍시 칠보면 축현리 31-1에 있다. 1996년 9월 8일 후손들이 최경선의 묘소를 이장하여 새롭게 조성할 때 뒤편에 3m 높이의 화강암 11개를 병풍처럼 설치하였는데, 전면에 동학농민군들이 죽창을 들고 땅속에서 부활하는 모습을 새겨 놓았다.

[상훈과 추모]

최경선은 2006년 동학농민혁명참여자 명예회복심의위원회에서 동학농민혁명 참여자로 등록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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