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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 동학농민혁명부터 1945년 8월 15일 해방 이전까지 전북특별자치도 정읍 지역의 역사. 1894년 1월 10일 전라북도 고부에서 시작된 동학농민혁명은 중국의 태평천국운동, 인도의 세포이 항쟁과 더불어 19세기 아시아 3대 농민 전쟁의 하나로 꼽힌다. 동학농민혁명은 반외세, 반침략의 민족 운동으로 이후 한말 의병운동, 4·19혁명, 5·18광주민주화운동, 6월민주항쟁으로...
개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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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 전북특별자치도 정읍 지역에서 반봉건·반외세의 기치를 두고 일어난 동학교도와 농민들의 혁명적 봉기. 동학농민혁명(東學農民革命)은 1894년 동학교도와 민중들이 일으킨 대규모 항쟁으로, 동학농민운동, 갑오농민전쟁, 동학농민전쟁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고종과 민씨 정권의 부패와 지방 수령들의 탐학이 원인이 되어 일어났다. 1894년 1월[음력]의 고부농민봉기·무장기포·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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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 1월 10일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고부면에서 탐관오리 조병갑 타도와 봉건 정부의 개혁을 위하여 일어난 농민 항쟁. 전라도 고부군(古阜郡)[현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고부면 일대에 있던 옛 고을 이름]의 백성들은 탐관오리 군수 조병갑(趙秉甲)의 수탈에 견디다 못하여 1893년 11월 사발통문을 작성하고 봉기를 준비하였다. 1894년 1월 10일 전봉준과 농민들은 봉건 정부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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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 4월 6일부터 4월 7일까지 전북특별자치도 정읍 황토현 지역에서 동학농민군이 전라감영군과 벌인 최초 전투이자 최대의 승리를 거둔 전투. 황토현(黃土峴)은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덕천면 하학리와 도계리 사이에 있다. 황토현은 계곡을 사이에 두고 두승산과 천태산으로 이어지는 높이 35m의 낮은 언덕이다. 1894년 4월 6일 밤부터 7일 새벽까지 황토현에서 동학농민군이 전라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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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 11월 27일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태인면 성황산 일대에서 동학농민군이 일본군과 관군을 맞아 싸운 최후의 전투. 동학농민혁명 당시 공주 우금치 전투에서 패한 동학농민군은 전라도 금구의 원평으로 철수하여 11월 25일 원평 구미란[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금산면 용호리에 있는 마을] 전투에서 일본군과 관군을 상대로 싸웠으나 다시 패하고 전라도 태인으로 후퇴하였다. 전봉준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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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9년 4월 18일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입암면 단곡리 왕심마을에서 동학농민군들 중심으로 형성된 농민 봉기. 1894년(고종 31)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하였다 살아남은 손화중포와 김개남포에 속한 농민군들은 제2의 동학농민혁명을 계획하였다. 농민군들은 계획을 실행하기 위하여 북접 교단의 지원을 받고자 동학의 지역 조직인 포를 설치할 수 있도록 허락을 요구하여 조직을 확대하고자 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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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에서 1910년 일제에 의하여 강제 합병되기 전까지 일어난 정읍 지역의 항일 무장 투쟁 운동. 박은식(朴殷植)은 『한국독립운동지혈사(韓國獨立運動之血史)』에서 “의병은 국가의 명령을 기다리지 않고 자발적으로 궐기하여 국가를 위하여 싸우는 의군(義軍)”이라 정의하였다. 서양인들은 ‘정의의 군대’라는 말에 초점을 맞추어 ‘Right Army’라 기록하였다. 하지만 의병은 정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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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 을사늑약 이후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무성서원에서 최익현과 임병찬의 주도로 기병한 호남 최초의 의병. 최익현은 1906년 6월 4일 태인 무성서원[현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칠보면 무성리]에서 문도 80명을 모아 강회를 열고 행동을 개시하였다. 여기에 유생들 외에 강종회(姜鍾會) 등 포사(炮士) 30여 명이 참가하여 사기를 높였다. 최익현의 기병 목적은 의병을 거느리고 북상...
일제 강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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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이래 전북특별자치도 정읍 지역에 있던 지방 행정 구역. 1914년 호남선 철도가 전라북도의 관문인 이리역부터 부용, 김제, 신태인, 정읍을 통과하게 되었다. 고부와 태인은 도로를 중심으로 발달한 전통적인 육로의 결절점이었기에 중심지의 기능을 점차 상실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정읍은 인근 지역의 행정과 경제의 중심지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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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이래 전북특별자치도 정읍 지역에 있는 지방 행정 구역. 신태인(新泰仁)은 정읍의 태인(泰仁)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신태인이 생긴 후로 태인을 한때 ‘구태인(舊泰仁)’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오늘날 신태인읍은 정읍시의 23개 읍면동 가운데 유일한 읍으로 내장상동, 수성동, 시기동에 이어 네 번째로 큰 곳이다. 동서 길이가 약 10㎞, 남북의 길이는 약 7㎞로 남북보다 동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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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월 전북특별자치도 정읍 지역에서 일어난 만세 시위 운동.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의 3·1운동은 1919년 3월 16일 태인 장날에 김현곤(金玹坤)·송수연(宋洙淵)·박지선(朴址宣) 등의 주도로 발생하였다. 이어서 이익겸(李益謙)·박환규(朴桓奎) 등이 천도교와 기독교인들과 연대하여 1919년 3월 23일 정읍 장날을 기하여 만세 운동을 벌이기로 사전에 모의하였으나, 전날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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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정읍에서 지주와 일제를 상대로 전개한 농민 운동. 1920년 4월 서울에서 창립한 조선노동공제회는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조직된 전국적 규모의 근대 노동단체이다. 조선노동공제회는 우리나라 최초의 노동자 잡지인 『공제』와 『노동공제회보』를 발행하였다. 『공제』는 노동자들에게 노동의 가치, 노동의 신성성, 노동의 존엄성, 노동문제의 이론, 세계의 노동운동 및 민족주의와 사회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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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북특별자치도 정읍 지역에서 청년 유지들과 사회주의자들이 청년 단체를 조직하고 전개한 사회운동. 정읍 지역에서 1920년 초부터 1927년 사이 활동한 청년 단체는 고부청년회를 비롯하여 태인청년회, 정읍청년회, 시산청년회, 천도교청년회, 소성청년회, 덕안청년회, 보천교청년단, 호부청년회, 오성청년회, 입암청년회, 산외청년회, 신태인청년회 등 모두 11개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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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북특별자치도 정읍 지역에서 소년 단체가 전개한 운동. 1920년대 정읍에는 태인소년회, 태인샛별소년회, 산외소년회, 정읍소년회, 비호단소년부가 조직되어 활동하였다. 1925년 공립학교 교장들은 “소년회에 가면 퇴학을 시킨다”, “어린이 잡지를 읽으면 벌을 세운다”고 할 정도로 당시는 소년 운동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였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 가운데서도 소년회가 창립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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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북특별자치도 정읍 지역에서 전개된 여성 교육 운동. 구한말 근대 교육과 더불어 시작되었던 야학 운동은 3·1운동 이후 1920년대에 이르러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1920년 정규 학교의 취학률은 학령 아동을 약 228만 3670명으로 추정할 때, 10만 7365명만 재학할 정도여서 4.7%에 불과하였다. 이러한 현상은 초등 교육 기관의 입학난을 가중시켰다. 입학난을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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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입암면 천원리에 조성된 다원. 정읍 지역에는 예로부터 자생 차나무가 여러 산야에 산재되어 있어 고품질의 녹차가 생산되었다. 정읍현, 태인현, 고부군 등 정읍 각 지역은 주요 차 생산지였고, 정읍 지역에서 생산된 차는 품질이 우수하여 특산품으로 진상되었다. 정읍 지역에는 10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순수 자생종의 차 밭이 보존되어 있다. 일제 강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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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신태인읍 화호리에서 일제에 항거한 합법적 농민조합. 1920년대 후반 전라북도의 합법 농민조합은 고창의 고창농조, 옥구의 옥구농조와 임피농민연합회, 익산의 이리농조, 임실의 임실농조, 전주의 구와리농조, 전주농조가 있었다. 정읍에는 화호리 농민동맹회와 신태인농조, 이평농조, 산외농조 등이 있었다. 이러한 합법 농민조합은 고율의 소작료 인하, 불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