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300410 |
---|---|
한자 | 井邑縣 |
이칭/별칭 | 초산,정촌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 |
지역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상동|장명동|시기동|수성동|연지동|농소동|하모동|상평동|삼산동|과교동|진산동|내장상동|입암면|북면 |
시대 | 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고려/고려 전기 |
집필자 | 박노석 |
[정의]
남북국 시대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지역에 있던 통일 신라의 지방 행정 구역.
[제정 경위 및 목적]
통일 신라에서 지방 행정을 원활히 하기 위하여 설치하였다. 경덕왕의 한화 정책과 관련하여 전통 지명을 중국식으로 변경한 것이다.
[관련 기록]
『삼국사기(三國史記)』 권 제36 잡지 제5에 “정읍현은 본래 백제의 정촌현이다. 경덕왕 대에 [정읍현]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지금[고려]은 그대로이다[井邑縣, 本百濟井村, 景徳王改名. 今因之]"라고 되어 있다.
『고려사(高麗史)』 권57 지 권제11 지리 2 전라도 고부군 정읍현 조에 “정읍현은 본래 백제의 정촌현이었는데, 신라 경덕왕 대에 지금의 이름[정읍현]으로 바꾸고 대산군의 영현으로 삼았다. 고려에 이르러 [고부군에] 내속하였다. 후에 감무를 두었다[井邑縣本百濟井村縣, 新羅景德王, 改今名, 爲大山郡領縣. 至高麗, 來屬, 後置監務]"라고 되어 있다.
『세종실록(世宗實錄)』 권 151, 「지리지」 전라도 전주부 정읍현 조에 “정읍현은 본래 백제 정촌인데 신라에서 정읍현으로 이름을 바꾸고 태산군의 영현으로 삼았다. 고려에서 다시 고부의 속현으로 삼았다. 뒤에 감무를 두었다[井邑縣: 本百濟 井村, 新羅改井邑縣, 爲太山領縣. 高麗改爲古阜屬縣, 後置監務]"라고 되어 있다.
『대동지지(大東地志)』 권 11 전라도 정읍 연혁 조에 “본래 백제의 정촌인데,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정읍으로 바꾸고 태산군의 영현으로 삼았다. 고려 현종 9년(1018)에 고부군에 속하게 하였다. 뒤에 감무를 두었다[本百濟井村。 新羅景德王十六年改井邑, 爲太山郡領縣。 高麗顯宗九年, 屬古阜郡。 後置監務]"라고 되어 있다.
[내용]
백제 때에는 정촌현(井村縣)이었으며, 757년(경덕왕 16) 정읍현(井邑縣)으로 바뀌고 태산군의 영현이 되었다가, 1018년(현종 9) 고부군에 속하게 되었다. 초산(楚山)이라고도 한다. 정읍현의 치소에 대하여서는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농소동 천곡리 샘실마을에 있다가, 경덕왕 대에 이르러 현재의 정읍시 장명동 일대[현 정읍시청, 정읍향교 등 위치]로 옮겨졌을 것으로 추정하는 설과 정촌현의 초기 치소는 신정리였으며, 후기 치소는 시내 장명리였다고 추정하는 설이 있다. 또한 정읍시에서는 2019년 천년부부사랑 정촌가요특구[현 한국가요촌 달하]를 조성하면서 백제가요 「정읍사」의 발원지, 정촌의 치소로 정읍시 상교동 정해마을이라 추정하였다. 정촌현은 현재의 정읍시 상동, 장명동, 시기동, 수성동, 연지동, 농소동, 하모동, 상평동, 삼산동, 과교동, 진산동, 내장상동, 입암면, 북면 지역에 해당한다.
[변천]
백제 시대 정촌현은 신라에서 757년 정읍현으로 바꾸었고, 태산군의 영현이 되었다. 1018년 고부군의 영현으로 바뀌었고, 고려 시대에는 감무를 두었다. 1413년(태종 13) 현감을 설치하였다. 1914년 고부군, 태인현과 합하여 정읍군이 되었다.